매년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암, 정부는 국가 암 검진사업으로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5대 암의 조기발견과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중 자궁경부암은 유방암과 함께 대표되는 여성 암 중 하나로 2015년 한 해에만 3582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2016년부터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에 포함하고, 20대 여성을 자궁경부암 검진 지원대상에 포함했다. 암 중 유일하게 예방 백신이 개발된 자궁경부암은 어떤 경로로 발병하고 어떤 원리로 예방이 가능한 것일까.

 

  자궁경부암 유발하는 HPV

  자궁 입구에서 발생하는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 HPV) 감염이 주된 원인이다. 본교 이규완(의과대 의학과) 명예교수는 “전체 자궁경부암 환자 중 99%가 HPV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HPV는 약 8000bp로 구성된 DNA 바이러스로 E(Early) 유전자와 L(Late) 유전자로 구성된다. 이 HPV가 성접촉이나 가벼운 피부 찰과상으로 손상된 상피세포를 통해 기저세포에 침입하면서 감염이 진행된다. 이때 E 유전자는 바이러스 유전체를 유지·증식해 감염된 세포를 증식시키고 L 유전자는 바이러스 껍질(Capsid)을 형성하는 데 관여해 바이러스를 세포 밖으로 퍼지게 한다.

▲ 자궁경부암은 자궁 입구에서 발생하며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이 주된 원인이다.

  특히 E6나 E7과 같은 종양 유전자는 각각 체내의 종양 억제 유전자인 p53이나 pRB를 비활성화시켜 정상세포의 악성화를 유도한다. HPV 감염으로 p53과 pRB 유전자가 차단된 기저세포가 과발현돼 전 상피세포를 대체하게 되면 자궁경부암으로 진행된다. 이재관(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성의 약 80%가 일생 동안 HPV에 한 번 이상 감염된다”며 “대부분 우리 몸의 면역체계로 인해 자연적으로 소멸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HPV는 약 170종에 달하며 그중 40여 종이 항문이나 생식기에 감염된다. 자궁경부암과 관련이 높은 바이러스는 16, 18, 31, 33, 35, 39, 45, 51, 52, 56, 58, 59, 68번이며 그중 16번과 18번이 자궁경부암 유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그 외의 바이러스는 항문과 생식기에 사마귀를 발생시킨다.

  HPV는 주로 피부 간 접촉이나 점막 간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적은 확률로 호흡기나 피부표면의 접촉, 입 주변에 사용하는 물건과도 연관된다. 이규완 명예교수는 “대부분 성관계 시 질이나 항문의 피부 접촉으로 옮겨진다”며 “화장실 변기나 목욕탕 등에서 간접적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가장 확실한 예방, HPV 백신

  암 원인이 비교적 명확한 자궁경부암은 HPV 감염을 차단함으로써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이 HPV 감염 이외의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다. 이재관 교수는 “자궁경부암 백신 사업 도입 후 자궁경부 전암병변의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는 대규모 연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6년부터 자궁경부암 백신(HPV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에 포함해 만12세 여성 청소년에게 무료로 예방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 HPV E6, E7은 세포자연사를 도와 세포의 과증식을 막는 p53, pRB를 비활성화시킨다. 이후 감염된 세포는 세포주기(cell-cycle)가 억제되지 않아 무분별하게 증식하며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한다. (위 그림은 hpv 바이러스에 의한 정상세포 악성화 과정을 간략하게 나타낸 그림입니다.)

  HPV 백신은 바이러스유사입자(Virus-like Particle, VLP)로 만들어진 유전자 재조합 백신이다. L 유전자가 형성한 바이러스의 외막과 유사한 입자를 넣어 항체를 생성하는 것이 주 원리다. 이때 VLP에는 실제 바이러스의 DNA가 없어 병을 유발하진 않는다. 백신에는 면역증가제도 포함돼 있다. 자연 감염을 통해 형성된 특이항체는 일관되게 발생하지 않아 재감염에 대한 예방을 기대할 순 없어서다. 민경진(고려대안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면역증강제는 체내면역기억반응을 증가시켜 접종 후 형성된 항체가 유지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 상용화된 HPV 백신은 ‘가다실’, ‘서바릭스’, ‘가다실9’으로 3종류이다. 세 백신 모두 고위험군 HPV인 16번과 18번의 VLP를 포함하고 있지만, 예방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종류와 면역증강제에는 차이가 있다. 예방 효과가 입증된 ‘가다실’은 가장 대중적인 4가 백신으로 6·11·16·18번을 예방해준다. ‘서바릭스’는 16·18번을 예방하는 2가 백신이다. ‘가다실9’은 4가 백신에 포함된 VLP의 용량을 증량시키고 31·33·45·52·58번의 VLP를 추가했다. 강순범 건국대학교병원 여성부인종양센터장은 “9가 백신은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항문암, 외음부암, 질암, 생식기 사마귀를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도 예방한다”며 “이전 백신에 비해 넓은 범위의 질환을 포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HPV 백신은 주로 성 접촉을 통해 전파되므로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전인 성 경험 이전에 접종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최근엔 남성의 백신 접종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HPV가 주로 성 접촉으로 전파되므로 남녀 전체의 예방 접종률이 증가하면, 집단면역의 효과로 실제 HPV의 유병률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돼서다. 또한 전문가들은 HPV는 자궁경부암 외에도 생식기 사마귀, 두경부암, 항문암 등의 질환을 유발하기에 남성에게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강순범 센터장은 “여성과 남성이 동시에 예방하는 게 자궁경부암 발병을 낮추는 방법”이라며 “또한 HPV 백신이 남성에게 발생하는 질환을 예방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HPV 백신 접종 후에는 정상적인 면역반응으로 인해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국내에 보고된 이상반응 사례는 접종 부위 통증이 약 80%로 가장 많았고 일상 활동을 방해할 정도의 통증은 6%로 나타났다. 매우 적은 확률로 심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호흡곤란이나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쇼크) 등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다른 백신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으로 꼽힌다. 이규완 명예교수는 “2007년 접수된 이상반응으로는 대부분 일시적인 실신이나 접종 부위 통증으로 가벼운 증상”이라며 “사망이나 장애를 초래하는 중증 이상반응은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조기검진도 미리미리 챙겨야

  자궁경부암 발생에 HPV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흡연, 성 관련 감염성 질환, 영양 상태 등 다른 요인들도 관여할 수 있다. 강순범 센터장은 “HPV백신을 접종해도 다른 요인들이 차단되지 않는다면 자궁경부암으로부터 100% 안전하다고 보긴 어렵다”며 “예방 백신을 맞은 여성이라도 주기적으로 자궁경부암 세포검사를 시행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주로 시행되는 자궁경부암 조기검진방식으론 자궁경부 세포검사(Pap test)와 인유두종바이러스 검사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자궁경부 세포검사는 자궁경부에서 채취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비정상 세포를 진단하는 검사로 현재는 액상 세포검사가 주로 사용된다. 인유두종바이러스 검사는 액상 자궁경부 세포검사와 같은 방법으로 검체를 채취하여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인유두종바이러스 검사는 정확성이 높아 세포검사와 병행했을 때 암 검진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선별검사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순범 센터장은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불편하고 두려운 곳으로 인식해 방문을 꺼리지만, 검진을 통해 초기에 발견하면 쉽게 치유할 수 있는 부인과 질환이 많다”며 “적극적으로 여성들이 진료를 받아 자궁경부암 예방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엄지현 기자 thumb@

그래픽 | 이선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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