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문화적 전통이 현존하는 산지승원, 세계가 인정하다 김인철 기자l승인2018.09.04l수정2018.09.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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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경내에 있는 5층 석탑의 모습이다.
▲ 신라 말기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흥사의 전경이다.
▲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경내에 위차한 범종루.

  지난 6월 30일 바레인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WHC)에서 우리나라의 산사(山寺) 7곳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산지승원)’의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등록된 7곳의 산지승원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로, 천 년의 역사가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7곳 산지승원의 가치를 세계에 증명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산지승원이 지닌 탁월한 가치

  WHC는 국경을 초월해 전 인류가 보존할 만큼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지닌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인정한다. 문화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선 총 10개의 OUV 평가 기준 항목에서 1~6번 항목 중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이번에 등재된 산지승원의 경우, 3번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문명의 독보적인 증거’ 항목을 충족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WHC 평가 자문기구로서 OUV 평가 기준 항목을 평가하는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문화재청에 3번 항목으로 WHC에 상정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코모스 한필원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산지승원은 신성한 장소로서 오랜 시간 불교전통이 지속된 특출한 증거”라며 “현존하는 문화적 전통이 독보적이라는 점에서 세 번째 항목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산지승원은 선종의 유입과 옛 조선의 억불정책에서 기인하는 역사성 덕분에 세 번째 항목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한국사찰은 1700년 전 불교가 수용된 이래로 다양한 양상을 띠며 변화해 왔지만, 현재는 주로 산사만이 불교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산지승원은 7~9세기에 창건돼 천 년 동안 한국 산사를 대표했다. 특히 8세기 후반부터 고려 시대까지는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 교리에 따라 속세와 거리를 두는 산사가 더욱 유행해 산지승원의 위상이 공고해졌다. 김정은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등재추진위) 책임연구원은 “산지승원은 자연을 경계로 삼아 산 안쪽에 있는 입지적 특성을 갖는다”며 “오늘날까지도 선종 수행의 중심 사원”이라고 설명했다.

  승려들은 산지승원에서 억불정책을 피해 수행을 할 뿐만 아니라 산지승원의 지속과 생존을 위해 자급자족하려 노력해왔다. 이러한 산지승원만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면서 산지승원을 포함한 산사만의 가치가 됐다. 김정은 책임연구원은 “산지승원은 한국불교가 발전했던 역사의 전 과정을 유·무형으로 담은 유산”이라며 “승려와 신도들이 신앙공동체를 구성해 수행, 생활, 신앙을 현재까지 단절 없이 지속해왔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불교의 전성기였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엔 성리학이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고 억불정책이 시행되면서 불교 전반이 크게 위축됐다. 이에 도심의 사찰은 사라지고 산지승원 등의 산사만이 고립된 위치 속에서 승려들의 자급자족으로 위태롭게 존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위태로움이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 산지승원은 독특한 승원 문화를 간직하면서도 수행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 차별화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권고대상 제외부터 만장일치까지

  이처럼 한국의 산지승원들은 역사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이코모스가 등재추진위와 문화재청에 보낸 보고서에서 마곡사, 봉정사, 선암사 3곳이 권고대상에서 제외당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봉정사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마곡사와 선암사는 역사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문화재청과 등재추진위는 제외된 세 곳의 산사가 가진 역사성과 규모로 판단할 수 없는 종합산지승원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7곳 모두 WHC 상정에 성공했다.

  봉정사의 경우 규모는 작으나 종합산지승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종합산지승원은 불교의 율을 공부하는 율원, 불전을 정진하는 강원, 참선의 수행이 이뤄지는 선원의 역할이 모두 갖춰져야만 한다. 봉정사는 비록 규모가 작아도 세 가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에 산지승원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황권순 문화재청 세계유산팀장은 “이코모스 측에 봉정사가 규모는 작지만 세 가지 수련이 행해지는 엄연한 종합산지승원이란 점을 강조했다”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규모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곡사와 선암사는 한국불교에서 두 산사가 갖는 위상과 함께 역사의 예시를 들어 기존 평가를 뒤집었다. 마곡사는 스님들이 수행으로서 불교 기물을 만들어 내는 문화로 유명하다. 특히 불화 제작에 있어서 그 역사성을 인정받고 있다. 선암사는 수행과 경제 자립의 의미로서 차밭을 경작하는 문화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또한, 두 산사 모두 신라 시대에 창건돼 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황권순 팀장은 “두 곳 모두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제시해 권고대상에 다시 선정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등재추진위와 문화재청의 철저한 준비와 외교력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실어줬다. 등재추진위는 이코모스의 등재권고문 중 산사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기술한 내용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수정한 ‘정오표’를 작성해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또한, 정오표를 바탕으로 ‘외교지지 교섭자료’를 제작하고 배포해 제42차 WHC 위원국의 지지를 요청했다. 그 결과 WHC 회의 당일에 스페인, 헝가리, 노르웨이 등 위원국들의 지지 발언을 얻었고, 끝내 만장일치로 산지승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유·무형적 가치 모두 지켜나가야

  세계문화유산은 해당 유산이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가치 있다고 인정받은 만큼 그에 합당한 보존 환경이 요구된다. 이에 이코모스 및 WHC에선 산지승원에 보존 및 관리에 대한 권고사항을 내렸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산지승원의 무형적 가치가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한 권고가 주를 이뤘다. ‘△문화유산이 아닌 요소에 대한 공간계획 △신규 건설 △리노베이션 지침 △승인절차 명확화 △문화재관리계획 수립’을 요구한 안이 이에 해당한다. 김정은 책임연구원은 “산지승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변화에 조응하고 승려들의 필요를 수용하며 산지승원의 생명력을 보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코모스는 권고문을 통해 세계유산문화 등재로 자연히 증가하는 방문객과 승려들의 삶이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사찰 내 적절한 분위기 유지를 위해 방문객 수를 조절하는 것이 골자다. 한필원 사무총장은 “유산의 수용력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광객을 계절별로 분산시키는 등의 관광 압력을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특히 성수기의 관광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관람동선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문화재청 세계유산팀은 산지승원 통합관리단을 발족해 체계적인 관리를 약속했다. 통합관리단은 방문객이 늘어남에 따른 편의시설 개발, 보존 방향 등을 세계유산적 관점에서 심사하고 논의하는 기구다. 특히 개발에 관련된 사안은 문화재위원회를 포함한 심의 기구들과 유네스코 측의 의견을 듣고 협의한 후 진행한다. 황권순 팀장은 “방문객의 증가로 화장실, 자판기 등의 편의시설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며 “이런 사소한 개발들도 산지승원이 가지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지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인철 기자 charlie@

사진제공│문화재청 세계유산팀

 

김인철 기자  charlie@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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