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구례에 내려 온 지 어느덧 6개월. ‘구례가 좋아서’라는 단출한 이유만으로 결정한 것 치고는 나름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길가에 있는 풀 한포기,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뭉치, 노을에 물든 주홍빛 지리산을 마주할 때마다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내려 노고단을 응시하며 마시는 건 자기 전에 숙제를 모두 끝냈을 때만큼이나 개운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우동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시원한 사누끼식 우동 생각이 간절한데 구례엔 우동가게가 없다. 비가 오면 우산을 찾는 것처럼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때마다 나는 여지없이 우동을 떠올렸다.

  우동에 빠진 건 서울에 있는 아주 작은 우동집을 알고부터다. 일본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테이블 4개짜리 소박한 우동집. 그러나 맛은 소박하지 않은 탓에 매번 갈 때마다 줄을 선다.

  이 집에 가면 나는 국물 없이 차가운 면에 유자즙과 쯔유를 둘러 먹는 우동을 선택한다. 우리나라에선 우동을 뜨끈하게 먹지만 사누끼 우동 특유의 쫄깃한 면발을 느끼려면 차갑게 먹어야 한다. 별다른 간을 하지 않고, 구수한 다시국물이 없어도 우동의 풍미가 느껴지는 게 맛의 비결이다.

  황교익 선생도 아닌 내가 우동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맛을 재현하기 위해 직접 우동면을 만들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나름 레시피를 찾아보고 공을 들였는데 우동이 아니라 칼국수가 됐다.

  며칠 전 사누끼 우동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야 실패한 이유를 깨달았다. 사누끼 우동의 본고장 일본 시코쿠에서 우동집을 운영하는 미아가와 씨. 열심히 반죽을 발로 밟고 있는 미아가와 씨에게 PD가 묻는다. “밟으면 정성이 들어가나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당연히 쫄깃하게 만들려고 밟는 거겠지. 나는 혀를 찼다.

  그런데 잠시 고민하던 미아가와 씨. “밟으면 귀여워요. 품을 들이는 만큼 반죽은 귀여워지잖아요.” 반죽이 귀엽다고? 그저 밀가루 덩어리에 불과한 반죽이 귀엽다니. 반죽을 밟으면 모양이 이리 변했다 저리 변했다 하는데 그 자체가 귀엽다는 말이다. 귀엽다고 말하는 미아가와 씨의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30년 동안 반죽을 치댔지만 지금도 반죽이 사랑스럽다는 그런 표정.

  문득 어떤 일을 하면서 귀엽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귀여우니까 반죽을 밟는 것처럼 순수하게 어떤 일에 몰두했던 게 언제였지. 가장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려다가 실패한 것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필요하니까’가 대부분이었다.

  다시 우동을 만들어야겠다. 이번에는 반죽의 뭉개지는 모양을 세심히 관찰하고 더 정성을 들여 치대야지. 급할 것도 없다. 비록 반죽이 귀엽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칼국수보단 낫지 않을까. <구례한량>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