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이 남북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발판이 되길”

학자와의 티타임 ⑳홍종선(문과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전남혁 기자l승인2018.09.11l수정2018.09.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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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 이후 73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언어도 그중 하나다. 남북은 각자의 언어정책을 폈고, 그 결과 둘 사이에는 꽤 넓은 간극이 벌어졌다. 이를 메우기 위해 14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작업이 있다. 언어 통일을 지향하며 남과 북의 학자들이 함께 만드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다.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요즘, ‘물리적 통일’에 앞선 ‘언어의 통합’을 위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홍종선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남측편찬위원장을 만났다.

 

  -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와 편찬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리 고려대학교에서는 남북언어 비교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평소에도 남북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시작되면서 초대 편찬위원장이셨던 홍윤표 교수님이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같이 해보자고 제의하셨어요. 이에 흔쾌히 수락했죠.

  일화를 말하자면, 어느 날 우리 연구원이 “북한에서는...”이라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했어요. 그러자 북측 연구원이 갑자기 “남조선에서는 그렇게 말합네까?”라며 정색하더군요. 겨레말큰사전 편찬 과정에서 ‘북한’, ‘남한’, ‘남조선’, ‘북조선’이라는 말을 하면 서로 불편하죠. 그래서 서로를 지칭할 때 ‘남에서’, ‘북에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어요. 이게 습관이 돼 평소 말투에도 반영이 됐죠. 하지만 10년간 서로 신뢰가 쌓이고 애정을 확인하다 보니 긴장감은 완화된 편이에요. 이제는 뒤늦게 합류한 연구원이 실수로 ‘북한’이란 용어를 쓰더라도 씩 웃고 넘어갑니다. 그만큼 상대방을 믿고 애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 ‘겨레말큰사전’ 편찬이 시작된 이후 남북관계는 긴장과 우호를 반복해 왔습니다. 이런 외적 상황이 사전편찬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나요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통일 사전 만들기를 제의했고, 북에서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 후 15년이 지나서 2004년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주기적으로 왕래해가면서 집필지침도 만들고 편찬 진행을 해왔어요. 하지만 보수 성향을 가진 정권 때는 사전편찬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에요. 원래 1년에 최소 4번은 남과 북의 학자들이 만났는데, 지난 10년간은 총 2~3번밖에 만나지 못했어요. 물론 남측은 남측대로 집필을 해왔지만 남과 북이 합의 보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이죠. 시작할 때는 이 사전을 2014년 봄에 마무리 짓도록 계획했는데, 8~9년가량 진전이 없어 2019년 봄까지 완성하기로 기한을 연장했어요. 그런데도 무리가 있어 2024년까지로 5년 정도 기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전이 78% 정도 완성됐다고 자체평가를 하고 있어요. 내년 봄까지 완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죠.”

 

  - 남과 북의 형태 표기 단일화가 중요한 과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형태 표기 단일화는 난관이 많은 상황입니다. 사전 집필 초기에는 ‘단일화 규범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서 합의된 사항은 사전에만 한정한다고 못 박아 놨어요. 만약 일반 언중들에게 이를 적용한다면, 양쪽이 형태 표기를 합의하기가 어렵겠죠. 전 국민들에게 “오늘부터 노동하지 말고 로동하세요”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규범이라는 말이 부담이 커 형태 단일화라고 누그러뜨렸어요. 그래도 단일화에 부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미래에 통일이 돼 남북 형태 통일안을 만드는 작업이 있다면 ‘겨레말큰사전’에서 합의 본 내용이 상당한 근거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단일화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작업이에요.

  지금 가장 쟁점이 되는 사항은 두음법칙입니다. 두음법칙은 다른 것들과 달리 표기뿐 아니라 발음에도 차이가 나는 규칙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코의 등을 일컬어 남에서는 ‘콧등’으로, 북에서는 ‘코등’으로 표기하지만 말할 때는 모두 ‘코뜽’이라고 하죠. 하지만 ‘노동’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북에서는 말할 때와 쓸 때 모두 ‘로동’이라고 해요. 이렇게 두음법칙은 표기할 때와 말할 때 모두 큰 차이가 나고, 해당하는 단어도 많아 합의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게 마치 남쪽 언어와 북쪽 언어의 특징처럼 언중에게 인식이 되고 있는 상황이고, 한쪽으로 통일이 된다면 상대편이 ‘밀렸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요. 그래서 다른 것들은 합의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됐지만, 두음법칙 합의는 뒤로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죠.”

 

  - ‘겨레말큰사전’에는 어떤 단어들이 등재되나요

  “‘겨레말큰사전’에는 기존 사전에 있는 말들과 없는 말들을 합쳐서 30여만 개의 단어가 등재됩니다. 남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북에서는 ‘조선말대사전’에서 단어를 선정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은 약 53만 개, ‘조선말대사전’은 약 40만 개의 단어들이 들어가 있어요. 물론 이것들을 다 실을 수도 있지만, 여기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소변’이라는 뜻의 ‘소피’는 요즘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죠. 실제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넣자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사전에서 총 23만 개를 뽑았어요. 여기에 지역어, 현장어, 신조어, 문헌어에서 새로 발굴한 말 가운데 등재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10만 개 정도가 추가됩니다.”

 

  - 분단 이후 73년이 지났는데, 남북언어의 이질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언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질화라는 용어를 안 써요. 언어가 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경상도 말과 전라도 말에 차이가 있듯이 남쪽 언어와 북쪽 언어에도 방언적 차이가 원래 있었어요. 그런데 광복 이후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남측은 남측대로, 북측은 북측대로 언어정책을 세웠어요. 그러면서도 남과 북이 서로 왕래가 없다 보니 둘의 차이가 자꾸 커지게 됐죠. 특히 전문어 영역에서 그 차이가 큰데, 전문어에는 전문 집단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언어가 많다 보니 남쪽에서 만든 용어와 북쪽에서 만든 용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외래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남에서는 외래어를 그대로 들여와 사용하지만, 북에서는 이를 우리말로 번역한 말들이 많죠. 가령 ‘잼’을 ‘단꿀’로, ‘커튼’을 ‘창가림’으로, ‘싱크대’를 ‘개숫대’로 번역했어요. 또 우리가 영어를 많이 들여온 데 반해, 북에는 러시아어가 많이 들어왔죠.”

 

  - 문법적인 차이도 크다고 들었습니다

  “문법적으로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조사, 어미에 관한 것들입니다. 명사가 조사를 만나 ‘내가, 나를, 나에게’처럼 변화하고, 동사와 형용사도 ‘먹으니, 먹어서, 먹고’와 같이 어미변화를 하죠. 명사 뒤에 붙은 조사를 곡용어미, 동사 뒤에 붙은 어미를 활용어미라고도 하는데, 근대 전환기에는 이들을 전부 다 단어로 보는 견해도 있었어요. 그런데 최현배 선생으로 대표되는 학자들은 명사 뒤에 붙은 것을 단어인 조사로, 동사 어간 뒤에 붙은 것을 어미로 해석했어요. 이것이 현재 남쪽의 학교문법이죠.

  한편, 1940년대 중반 이후 정열모 선생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조사나 어미를 전부 명사의 어미, 동사의 어미로 보려는 견해를 보였어요. 이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일부 북쪽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이것을 기본으로 문법체계가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북에서는 조사를 따로 단어로 인정하지 않고 명사의 어미로 봅니다. 북에서는 조사와 어미를 모두 ‘토’라고 해요. 북에서 9품사가 아닌 8품사를 설정하는 이유죠. 결국 ‘토’의 설정 여부가 남북 문법체계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남북의 언어 통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언어는 통일되기가 쉽지 않죠. 통합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통일에 가까운 통합이 좋기는 합니다. 남과 북이 지금은 갈라져 있지만 머지않아 지리적,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겠죠. 하지만 인문적, 정서적 교류 없이 국토통일, 정치통일만 앞세운다면 위화감과 반목이 커질 거예요. 이러한 인문학적 통일에 언어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겨레말큰사전’이 남북의 언어를 서로 이해하는 데 발판이 됐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건, 남과 북의 말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고 있지만 이게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남과 북의 언어가 통합을 이룬다면 우리말이 더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 홍종선(문과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1988년부터 2016년까지 본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12월 남측편찬위원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2014년 5월부터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남측편찬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글 | 전남혁 기자 mike@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전남혁 기자  mike@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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