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쌀롱] 소소한 망함의 공감대, <네코노히>
[타이거쌀롱] 소소한 망함의 공감대, <네코노히>
  • 고대신문
  • 승인 2018.09.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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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쓰는 이유는, 모두가 인생에서 토로하고픈 무언가가 있어서다. 그런데 연결 관계를 맺고 게시물을 올리도록 하는 인터페이스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어떤 단면을 토로할지 각각 SNS의 개성이 생겨난다. 페이스북이 지인과 친근하게 소식 주고받는 느낌을 준다면, 인스타그램은 잘 사는 자신을 표현하는 느낌이 크고, 트위터는 뭔가 잘못되고 망쳐버린 것을 열변하는 분위기다. 그런 트위터인데도, 무슨 신랄한 일침을 날리는 것이 아닌, 그저 마음이 훈훈해지는 만화가 유행했다. ‘시무룩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네코노히>(큐라이스 / 재미주의)는 바로 그 시무룩고양이 시리즈를 단행본화한 작품이다. 내용은 대단히 간단한 4칸만화인데, 통통하고 소심한 고양이가 주로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거나 놀고자 하는 일상에서 겪는 수없는 실패담이다. 당장 표지로 쓰인 것만 해도, 밥에 달걀 노른자를 비벼먹으려고 깼는데 그릇 옆으로 흐른 장면이다. 고양이 네코노히(‘고양이의 날’이라는 말과 헐리웃 배우 매튜 맥코너히의 이름을 섞은 말장난이다)의 수난은 모두 그런 식이다: 볶음밥을 중화냄비에 열정적으로 볶다가, 볶는 과정에서 다 흘려서 완성하고 보니 정작 먹을 게 없다. 음식 캔을 따다가, 캔 꼭지만 떨어진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권 시스템을 몰라서 하염없이 주문받으러 오기를 기다린다.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는데, 정작 케첩을 뿌리려고 했더니 떨어져서 나오다가 만다. 야심차게 캠핑을 갔더니, 비만 주룩주룩 온다. 상황이 망했음을 눈치채지 못하면 네코노히는 계속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굳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눈치를 채버리고, 의기소침한 표정이 된다. 분노도 절망도 슬픔도 아닌, 묘하게 귀여운 시무룩함 말이다.

  등장하는 모든 짧은 사연들의 공통점은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망함이다. 궤멸적 피해거나 가학의 죄책감에 들 정도로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잔뜩 기대로 즐거워져서 부풀어 오르다가 그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제대로 안 되어 시무룩해지는 식의 좌절인 것이다. 결국 다음번에는 성공한다는 식으로 종종 보너스 칸을 부록처럼 달아주기는 하지만, 역시 핵심은 결국의 성공보다는 망함 자체다. 남의 희화화된 파국이라는 점에서 슬랩스틱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왁자지껄한 비웃음의 정서가 아니다. 약간만 어리버리하거나 약간만 상황이 잘 안 풀리면 누구라도 충분히 겪을 법한 수준의 범상한 좌절에 대한 공감대, 그 애잔함이 웃음이 된다.

  남의 불운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대 속에서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일 때, 소소한 망함을 구경하는 것은 일종의 삶의 활력소가 된다. 4칸마다 훌훌 털고 다시 낙천적으로 재차 무언가에 도전하는 고양이를 보며, 우리도 지금 봉착한 소소한 망함을 뒤로 하고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또 시무룩해지겠지만.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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