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저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공기가 차갑다. 햇볕이 이리 뜨거운데 찬바람이 불다니 헛웃음이 난다. 그 때도 이런 바람이 불었지 하며. 어리숙한 사랑놀이가 채 백 일을 못 가 끝이 났다. 행복했던가? 네 달간 마음의 병을 앓았다. 내리 찍은 자존감을 되찾기까지 꽤 걸린 셈이다. 헤어지던 날에는 목련꽃이 지고 있었다. 그림자도 곯아떨어질 해 질 녘 몇 분 남짓이었다. 붉게 물든 꽃잎이 마치 불에 타는 듯하여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목련의 끝은 한 줌 재가 된다. 한 철 하얗게 타오른 사랑이 속절없이 사그라진다. 잿가루는 바스스 부서져 버리는데 덥고 습한 본심은 가슴 깊숙이도 엉겨버렸다. 시인의 말처럼 타다 남은 편지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다만 그의 말에 단호히 반대한다. 질척이는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말라. 상처로 기억되는 사랑은 흉터로 남아 시간이 지나도 벌레처럼 영혼을 좀먹는다. 순백의 눈을 더럽히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다.

낫고 싶다. 치기 어린 과거로부터 멀끔히 나아버리고 싶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언제쯤 사랑 앞에 솔직할 수 있을까. 일렁이는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 몇 번인가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기형도처럼 사랑을 잃고 나는 쓴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흰 천을 붙잡고 긴 여름을 울어냈으니 밀려오는 가을바람에 한 톨 먼지조차 날아가거라. 다시 피는 꽃처럼 덧없는 게 사랑이니.

* 기형도의 ‘빈집’ 중에서.

 

조용일(문과대 독문15)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