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그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보따리 장사’였던 시간강사의 말이다. 한가한 신세 한탄이 아니다. 자살 직전의 절박한 심정이다. 주인공은 당시 44세의 한경선 선생님이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귀국, ‘전임’ 자리를 꿈꾸며 꼬박 4년을 강의만 했으나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오죽하면 박사 공부를 한 미국에 가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음독자살 했을까? 2008년이었다. 그리고 꼬박 10년이 흘렀다.

  지난 9월 3일, 관련 당사자가 참여한 ‘대학 강사제도 개선협의회’가 합의안을 발표했다. 대학 강사의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이 핵심이다.

  우선, 강사도 대학 ‘교원’의 일원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원래는 강사도 교원이었다. 그러나 1977년, 박정희 정부가 ‘독재 비판’을 예방한다며 교원 지위를 박탈했다. ‘보따리 장사’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40여 년이 흘렀다. 이제 강사도 단순한 ‘일용 잡부’가 아니라 당당한 교원이 된다. 이제 강의 외에 연구, 학생지도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처우 개선은 방학 중 급여 지급, 연구 공간 제공, 부당해고 등에 대한 소청권, 최대 3년간 강의 가능, 4대 사회보험 및 퇴직금 보장 등이다.

  물론, 이 합의가 바로 시행되는 건 아니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보완‧정비돼야 하고 적정 예산도 반영돼야 한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스스로의 역량이나 의지로 이 합의안을 충실히 이행하긴 어렵다.

  오늘날 약 5만 명 내외의 전임교원과 10만 명 내외의 시간강사가 대학 교육을 담당한다. 크게 보아 시간강사들은 전임교원이 받는 보수의 10% 내외를 받으면서도 강의는 50% 이상 전담해 왔다. 대한민국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단되어 있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대학에서 그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그 골이 매우 깊다.

  그래서 시간강사, 강의전담교수, 계약교수, 초빙교수, 대우교수, 연구교수 등 그 이름은 다양해도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전임 트랙’의 정규직 교수에 비하면 너무나 힘겨운 세월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우선, 학생들이 선생님 또는 교수님이라 부르지 않고 “강사님”이라 부르는 순간, 이들 가슴엔 못이 박힌다. 그리고 전임교수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이용만 당하기도 한다. 지금은 다르지만, 앞의 한경선 선생님 사례처럼, 실력이나 인성이 훌륭해도 ‘힘 있는’ 교수로부터 발탁되지 않으면 절망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방학 중엔 월급이 없어 여기저기 알바를 뛰어야 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박사 공부까지 했건만, 이런 식으로 ‘일용 잡부’ 취급을 당하는 것은 일 자체의 고달픔보다 더 참기 힘든 인간적 모욕이었다.

  ‘대망의’ 2000년 이후로도 대학 강사의 자결이 이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국민대, 경북대, 부산대, 서울대, 건국대, 조선대, 성대, 서강대, 대구 모 대학, 서울시립대, 김천 모 대학, 부산가톨릭대 등에서였다. 서울대의 백준희 선생은 프로젝트 논문을 주문 생산하는 자신을 “유리상자에 갇혔다”며 절망, 자살했다. 조선대의 서정민 선생은 교수임용 비리와 논문 대필을 고발하며 자결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래서 이번 합의안이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시간강사법을 지연, 유예하지 말고 2019년부터 착실히 시행하는 것이다. 대학 당국도 제발 법을 교묘히 우회하려는 ‘꼼수’ 같은 걸 쓰지 말길 바란다. 모든 교원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자유‧평등‧우애‧생명‧평화‧진리의 이념으로 당당하게 전진하는 대학만이 온 사회를 정의롭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전임교원들 역시 이미 오래 전 경험한 시간강사의 서러움을 잘 알지 않는가? 새해부턴 15만 내외의 대학 교원들이 모두 당당한 교수로서 활기찬 삶을 살기(연구, 강의, 봉사)를 소망한다.

 

글│강수돌(융합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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