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빌더city builder라는 장르가 있다. ‘심시티’ 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 장르는 기존의 게임 방식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취한다. 딱히 엔딩이라고 할 게 없이 그저 건물을 짓고 도시를 키워가는 과정에서의 재미를 추구한다. 단지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기에 시티 빌더 장르는 나름 탄탄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시티빌더 중에서도 독특한 배경으로 주목받는 2018년 출시 게임 ‘프로스트펑크’ 는 19세기 말 무렵 대한파가 몰아쳐 오기 시작한 지구라는 가상 역사를 모티프로 삼는다. 영하 40도의 한파에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런던을 떠나기 시작한다.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무리가 버려진 거대한 증기 발전기를 발견하고, 발전기를 가동해 추위를 버텨 보자는 사람들이 작은 거주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게임 ‘프로스트펑크’는 시작된다.

  생존자들은 거대한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석탄을 채굴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원정대를 외부에 보내고, 동상과 질병을 치료할 진료소를 세워야 한다. 안정되어가는 거주지에는 더 많은 피난민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부족한 식량과 희망 없는 미래에 지쳐 간다. 이들을 이끌며 거주지에서 성공적으로 마지막 한파를 버텨내는 것이 ‘프로스트펑크’ 의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들이다.

  이 과정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 인류가 직면했던 질문들과 유사하다. 동상으로 손을 잃어 노동력으로 활용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노동력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아동노동으로 돌릴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 실제 산업혁명과 근대화 과정에서 인류가 되물었던 장애인에 대한 질문, 아동노동에 대한 이슈들은 그러나 ‘프로스트펑크’의 멸망해가는 인류사회라는 전제 앞에서 좀 더 묵직한 질문으로 변모한다.

  근대화 시대는 성장하고 밝아질 미래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기대,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사회 발전은 인류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보다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게임 ‘프로스트펑크’ 는 그 질문을 좀더 엄혹한 조건에서 묻고 있는 것이다. 식량과 자원이 모자라고, 그나마도 개선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당신들은 인권과 윤리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심시티’ 에서 가벼웠던 의사결정은 ‘프로스트펑크’ 에서는 공동체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무거운 선택으로 등장한다. 모자란 식량을 대체하기 위해 식사에 톱밥을 섞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게임 속에서 단지 톱밥 섞인 식사가 질병률을 올린다는 결과 이상으로 윤리적인 플레이어에게 뼈아픈 일이다. 이 이슈는 특히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좀 더 쓰디쓴 질문으로 다가온다. 과거와는 다른, 21세기의 한국사회 자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흐름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성장, 저출산. 모든 성장의 가능성이 낮게 점쳐지고 인구와 시장, 일자리가 줄어가는 하향의 시대가 예고되어 있다. 고도성장을 달리던 시대와는 산업과 학문, 생활과 문화 모든 면에서 다른 시대일 것이다. 성장 시대의 윤리적 가치들은 이제 과거보다 엄혹한 시대상황 앞에 도전받을 것이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복지가 다 뭐냐는 질문들은 어려워지는 시대상황을 맞아 더욱 큰 힘을 얻을 것이다.

  게임 ‘프로스트펑크’ 의 질문은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예언적 질문이 된다. 다가오는 저성장의 미래에도 우리는 기존처럼 보편적인 인권을 지켜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외면하고 싶지만 언젠간 직면해야 할 무거움일 것이기에 ‘프로스트펑크’ 의 플레이는 마냥 가볍기 어려울 것이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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