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만 있고 내용은 없다.’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는 총학생회에 전하는 한 줄 평이다. 당장 문제 제기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부터 부족하다. 총학생회는 현행 제도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한다. 간선제·임명제가 혼합돼 구성원, 특히 학생들의 의견반영이 어렵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학생들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총창추천위원회에 학생 대표의 자리가 있어 학생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무시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총장선임제도 결정은 법인의 적법한 권리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법인은 정관과 이사회 회의 등 법에 따른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며 정당하게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정당한 권리로 마련한 제도의 개정을 요구하려면 ‘비민주적’이라는 모호한 말에 묻어가지 말고 더욱 날카롭게 지적해야 한다.

  비판의 근거가 부실하니 요구사항도 모호하다. 지금은 ‘총장직선제’ 하나로 뭉뚱그려졌지만, 세부적으로 짚어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학교의 구성원은 다양하고 구성원 간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의 크기도 각자 다르다. 학교에 4년간 머무르는 학생과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머무르며 경력을 쌓아야 하는 교수가 짊어지는 책임의 크기는 같지 않다. 그리고 책임의 크기만큼 투표 반영 비율도 달라진다. 대표적인 직선제 사례인 이화여대에서도 교수와 학생, 교우 등의 투표 반영 비율이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직선제가 더 민주적인가? 학생 1인당 1표가 주어져야만 민주적인가? 반대로, 학생 투표의 1%를 반영한다면 ‘우리 손으로 총장을 뽑는’ 진짜 민주적인 직선제가 실현되는 것인가? 총장직선제가 더 나은 방법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다. 한때 많은 학교가 직선제를 택했지만, 파벌 싸움 등으로 구성원 간 갈등을 심화시켜 폐지된 바 있다. 총학생회는 어떤 직선제를 요구하는지, 그것이 왜 더 민주적인 절차인지 설명한 적이 없다. 만약 지금 당장 학생대표에게 제도를 개정할 권한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디테일의 악마’의 농간에 빠질 게 분명하다.

  직선제 시위에 진짜 직선제는 없다. 단식투쟁과 집회, 행진 등에서 직선제를 외치고 있지만, 누구도 자신들이 원하는 직선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캠퍼스에서는 야성적인 외침만 울리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직선제가 무엇인지 토론하는 논의의 장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지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학교와의 논의를 준비하기 위해 총학생회장은 단식을 중단했다. 지금이라도 어떤 점이 비민주적인지, 어떻게 해야 더 민주적인 절차를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칼을 다듬어야 한다. 지성 없는 야성은 짐승의 울음일 뿐임을 명심하라.

 

김용준(문과대 철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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