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知識人)’의 함의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늘 변해왔다. 심지어 그 정의조차도 급변하는 사회 맥락에서 특정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포괄적으로 이해하면 지식으로써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거나, 때로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학문의 길에 침잠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의미로 해석하든 그들에게 거는 사회의 기대와 요구는 대체로 비슷하다. 매우 크고, 또 넓다.

  그렇다면 ‘오늘날, 바로 여기’라는 시공간적 제한을 둬보자. 2018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지식인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이들이 바라보는 지금의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본지가 준비한 ‘특별대담 – 편집국장이 만난 지식인’은 대중적으로, 또는 지식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이들을 만나는 기획이다. 그 첫 발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와 내딛는다. 한국 사회가 점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나아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그는 “편견으로 치우치는 ‘자기 확신’을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12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지금은 서양사학자로 이름을 알리셨지만, 학부 때는 경제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주변에서 그 질문을 많이 던지더군요. 경제학을 전공했으면서 왜 역사학자가 되었냐. 사실 사람들의 그런 궁금증이 제가 궁금한 부분이에요.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공을 찾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우리나라는 특정 학부에 들어오면 쭉 같은 길을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경제학을 조금 해보니까 저한테는 안 맞았어요. 자료를 바탕으로 수식을 다루고, 그래프를 만들고...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는 맞지만, 저는 뭔가를 직접 보고 말과 글로 전달하는 것이 훨씬 좋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대학 다니던 70년대는 캠퍼스에 탱크가 들어오고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였거든요. ‘세상이 왜 이럴까?’ 이런 작은 고민에서 얻은 답이, 역사학이었어요. 세상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역사에 있겠구나. 개인적인 고민과 시대의 영향이 고루 맞아떨어진 셈이죠.”

 

  - 역사학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 중 서양사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우리나라의 특수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가 가장 중시되고 그 다음으로 동양사, 서양사 순으로 학계에서 비중을 두는 느낌이에요. 개인적으로 답답함을 느끼죠.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서양사가 딱 맞죠. 세계사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안을 볼 수 있거든요.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주도권은 결국 서구가 쥐고 있잖아요.”

 

  -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사 교육이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그 점이에요. 중·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 선택과목에 포함돼있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거의 선택하지 않죠. 한국사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세계사는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구요. 결국 제대로 된 세계사 지식 없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봐요. 세계를 상대하고, 세계 속에서 살려면 그들을 알아야 하거든요. 자칫 학문 이기주의로 보일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타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사를 공부한다고 세상의 변화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사고방식 자체가 세련돼질 수 있죠.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세대가 중추적 위치로 올라섰을 때, 미처 채우지 못한 지식적·정신적 공백이 느껴지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또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죠.”

 

  - 네이버에 연재하신 ‘서양근대인물열전’이 그렇게 나왔군요

  “그렇습니다. 2016년 3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네이버에 연재한 ‘서양근대인물열전’을 엮어서 <유럽인 이야기>를 냈어요. 철저히 대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에요. 이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기고를 했죠. 그렇게 짧은 연재 형식의 글을 써본 적이 이전까지 없었고, 억지로 구겨 넣는다는 생각으로 청년 세대의 코드에 맞춰서 썼어요.”

 

  - <유럽인 이야기>에 소개된 인물이 총 24명입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사람이 있나요

  “모든 인물들에게 다 애정이 있죠. 그 인생 스토리가 사랑스러워서, 반대로 오히려 위험해서 더 끌리기도 해요. 다만 지금 당장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모차르트입니다. 그는 정말 천재예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베토벤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갔고, 모차르트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천재 중의 천재에게 붙이는 설명이죠. 모차르트는 어떤 작품을 구성하면 그 음악 전체가 한 덩어리처럼 머릿속에서 오갔다고 합니다.

  사실 천재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시대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음악의 역사는 특히 그렇잖아요. 혁명, 투쟁과 음악은 늘 떼놓고 볼 수가 없죠.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면서 또 시대에 투철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 넘어 우리에게 와 닿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절한 것은 안타깝지만 굉장히 멋있는 인물이죠. 그의 음악은 아름다우면서, 또 슬퍼요.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을 참 좋아합니다. 정말 아름답지만 그 속에 슬픔이 깃든 것들이요.”

 

  - 지금 한국 사회에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첫 손에 꼽을 인물이 있을까요

  “단적으로 말해서,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사고의 재료일 뿐 현재의 답은 우리가 찾는 것이죠. 특정 역사적 모델을 현재로 데리고 오려는 것은 잘못된 사고예요.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 같은 인물이 지금 권력을 잡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 말씀하신 로베스피에르를 보면 ‘인간은 참 모순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그렇죠. 로베스피에르는 정말 생각할수록 오묘한 사람입니다. 그는 서른부터 프랑스 혁명에 뛰어들어 5년 동안 불꽃처럼 살다가 죽었어요. 그가 살아생전 직·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만 2000명 가까이 됩니다. 재밌는 것은 서른 이전의 삶은 그런 ‘잔혹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평범한 삶이었죠.

  물론 성격적으로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믿는’ 구석이 있었어요. 그 양반은 한 번 생각하면, 그 논리의 끝까지 갔던 사람이었죠. 이러한 태도가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그가 지금 한국에서 권력을 잡으면 우리 사회는 더 극단화될 거예요. 중요한건 우리 같은 일반시민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평범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지만, 갑자기 혁명적인 시대를 만나서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극단화될 수 있어요.”

 

  - 요즘 들어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는 공론장이 실현가능한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여러 사안에서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는 모습을 종종 봐요. 타인의 말에 잘 귀 기울이지 않죠. 자신의 생각이 가진 한계를 인지하며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대화를 이어나가야죠. 참 어려운 부분이기는 합니다. 결국 초·중·고등학교 교육에서 길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역사적으로 그런 이상적인 공론장에 제법 가까웠던 사례가 있었나요

  “음...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그랬을까요? 광장에서 서로 대화하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고급스러운 부분까지 질문을 던지는 문화였다고 하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계몽주의 시대 살롱문화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서로 초청해 대화를 나누고 교류의 장을 열었으니까요.”

 

  - 대학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미국 일부 대학에서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1학년 개론수업으로 ‘토론’을 가르치는거죠. 토론을 하되 고집부리지 말고,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공격적으로 말하면 퇴장시킵니다. 심지어 학부모가 참여하기도 하구요. 우리나라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역사를 공부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학생들이나 저 같은 역사가들이나 특히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답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내가 옳다는 전제를 가지기보다, 서로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죠. 자신의 편견을 버리는 것은 가슴 쓰린 일이에요. 큰 용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문득 ‘역사가란 어떤 존재인가’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예전에 책 쓸 때 일부러 멋있는 표현을 쓰고 싶어 ‘역사가는 무당이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 부르짖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먼 과거와 먼 미래, 지금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를 연결시켜준다는 점에서도 마치 무당과 비슷한 존재죠.”

 

  -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계신 저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생각은 여러 가지 하고 있어요. 우선 당장 해보고 싶은 것은 ‘해양사’를 다루는 작업입니다. 바다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가 궁금하거든요. 중국사, 유럽사, 아메리카사 등 여러 역사가 서로 만나고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무대는 바다입니다. 바다는 통신, 교역 등 오늘날에도 정보의 이동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죠. 이전에 <대항해 시대>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것의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당시 15~18세기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후 19~20세기가 빠져서 채우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청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역으로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너희들 행복하게 살고 있니? 사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너무 과도하게 걱정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거든요. 조금 덜어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불안감의 원인은 아무래도 조바심일겁니다. ‘빨리 뭔가를 해야해’라고 목표를 정해버린 다음, 그 목표가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고 뛰어드는 거죠. 약간은 가볍게 즐기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진짜 자신이 바라는 바가 뭔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말하니 꼰대처럼 들릴까 걱정되네요, 허허.”

 

글 | 장강빈 편집국장 whisky@
정리 | 박연진 기자 oscar@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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