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자 입장에서 교양 강의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학기 수강생들도 꽤 다양한 학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체육교육과 학생도 한 명 있었는데 그 학생은 결석이 잦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알아보니 아이스하키 팀 소속 선수 학생이었다.

  아무리 선수 학생이라도 그냥 학점을 줄 수는 없었다. 학생에게 연락해서 그간 결석한 것을 보충하고 시험도 봐야만 학점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훈련과 시합으로 빠진 강의는 보충해 주고, 시험도 별도로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다행히 공부에도 열의가 있던 학생이어서 잘 따라 주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 학생은 궁금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떤 질문이라도 환영이니 자유롭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 학생의 첫째 질문이다. 교수님 연구실에는 책이 정말 많은데 이 책들을 교수님께서 다 읽으셨는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필자는 대답했다. 여기 있는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지만 여기 있는 책들을 모두 다 읽은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교수, 특히 인문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학생처럼, 과연 저 많은 책들을 저 교수가 다 읽었을까 궁금증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연구실에 있는 책은 그간 읽고 소장한 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집에 있는 책은 물론이고, 읽고 다른 사람을 주거나 공간이 부족하여 아쉽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던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그리고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연구실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책이 많다. 하지만 연구실에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는 전혀 읽지 않고 꽂아만 둔 것도 있고,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읽어 참조한 책도 있다. 그러니 모든 책을 다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교수님은 강의를 1주일에 몇 시간 정도 하시는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보통 1주일에 6시간을 한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조심스럽게 두 번째 질문을 본격적으로 했다. 강의를 하지 않는 (그 많은)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이 질문을 받고 학생에게 되물었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1년에 몇 시간 시합을 하는지, 그리고 시합을 하지 않는 (그 많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나의 이 질문에 학생은 모두 이해가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의 눈에는 교수가 강의하는 6시간만 보이는 모양이다. 마치 선수들이 시합하는 모습만 우리에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교수와 선수 모두, 강의와 시합을 하지 않는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강의 혹은 시합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고 또 해야만 한다. 그래야 눈에 보이는 강의와 시합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교수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교수들은 강의를 직접 수행하는 시간보다 강의 준비, 과제 점검, 채점 등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또, 교육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자이기 때문에 연구를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쓴다. 연구 결과를 논문이나 저서로 발표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자신의 연구만 챙겨서도 안 된다. 새로운 연구자를 키워내야 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의 연구를 지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또, 학생들과의 면담에도 많은 시간을 쓴다. 강의만으로는 학생들을 원하는 만큼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자주 잊곤 한다. 방을 가득 메운 책들도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도 사실은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책은 유형의 물건이라 쌓여서 눈에 보이니 그 일부라도 엄청난 양으로 보인다. 반면에 시간은 무형의 존재라서 쌓인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우리 눈에 보이는 그 일부의 시간만이 전부인 듯 착각한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은 무수한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그 뒤에 숨어 있는 시간의 두께도 함께 읽어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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