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강은진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 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늙음은 추한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연로한 인간도 아름다운가. 시는 인간의 내면의 꿋꿋한 힘에 주목하며, 이러한 물음들에 묵묵히 답하고 있다.

  시인은 늙은 몸과 젊은 눈썹의 대립을 신선한 표현으로 계속 부각한다. 이만호 할머니의 몸은 퇴보, 필멸, 부패의 그것이다. 반면 눈썹의 성격은 강렬한 생명력, 영원성, 여유로운 웃음이다. 할머니는 거동도 불가한 늙은 육신을 가지고 있으나, 초라하거나 비극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육신의 결핍은 오히려 눈썹의 충만함을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는 미처 꺼지지 못한 생명력이 아니라, 부처가 타고 남은 사리처럼 본질적이고 고고한 새로운 생명력이다.

  눈썹의 묘사는 노인의 강인한 자아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만호 할머니를 정신도 병들고 약한 사람으로 설정했다면 ‘군무에 펄떡이는 멸치’와 같은 칭송은 하지 않았을 테다. 기능이 다한 육신을 갖고도 젊고 맹렬한 정신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씩씩한 생명력을 믿고, 여전히 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 즉 노인의 자존감이 쇠로한 몸에서 활기찬 힘을 발하게 한다.

  자존감을 가르쳐주는 계발서가 차트를 정복한 세상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바로 이 노인의 눈썹이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가지런히 웃을 수 있다. 넘어진다면 금세 일어나고 몰락한다면 그래도 존엄하리라. 마지막 화자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눈썹을 상큼히 물들이도록 하자.

 

김다현(미디어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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