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왜곡하는 ‘조현병’…성숙한 보도 필요한 때

김예진 기자l승인2018.09.18l수정2018.09.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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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조현병 포비아 확산에 일조했다고 말한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보이스2>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폭탄을 설치해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위협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언론에선 자극적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 치료 기록이 있으면 앞다퉈 보도하면서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대중매체가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한다고 입을 모았다.

 

확산되는 ‘조현병 포비아’

  조현병은 주로 환각, 망상, 사고과정 장애 등의 양성증상과 감정반응 감소, 의욕 감퇴, 사회적 위축 등의 음성증상을 수반한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과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삶이나 행동을 비난하는 형태인 ‘환청’이 가장 흔한 증상이다. 고영훈(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증상이 심각한 조현병 당사자는 환청의 명령을 따르거나 환시로 보이는 인물에게 행동을 취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며 “이러한 반응의 예측이 어려워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곤 한다”고 설명했다.

  조현병의 유병률은 약 1%로 우리나라에는 약 50만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조현병 진료 인원은 2012년 10만1000명에서 2017년 10만8000명으로 증가했다. 증가추세와 함께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신분열증’이라는 과거 병명이 내포한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조현병’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대한조현병학회 학술이사인 이헌정(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회적 낙인을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실제로 2017년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실시한 대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다’라고 답변한 사람이 61.4%에 달했다. 윤석준(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장애가 본인과 주변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거리감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낙인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자극적으로 조현병 비추는 미디어

  전문가들은 대중이 쉽게 접하는 대중매체가 조현병 포비아 확산에 일조했다고 말한다. 2016년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며 진술한 이후 조현병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보도가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7월 31일 80대 노모를 살해해 체포된 50대 조현병 당사자는 “몸 안에 어머니의 영이 들어와 어머니를 때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조현병의 환청 증상이지만 연합뉴스는 조현병 환자가 ‘귀신에 씌어서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는 식의 자극적인 헤드를 달아 보도했다. 정신장애인당사자 대응 언론 ‘마인드포스트’는 “다수 언론이 대중의 공포심을 빌려 자신들의 우려를 표현한 기사를 내보낸다”며 비판했다. 최기홍(문과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낙인을 여과없이 기사에 반영한 현상”이라며 “이러한 무분별한 보도가 ‘조현병 포비아’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는 조현병 환자들을 폭력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8월 11일에 방영된 <보이스 시즌2>는 조현병 환자가 폭탄을 제조하고 몸에 두른 뒤 지하철에서 인질들을 위협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냈다. 마인드포스트 측은 “드라마 <보이스 시즌2>가 ‘조현병 포비아’를 조장한다”며 “증상이 심한 경우 산수 문제도 풀지 못하는 조현병 환자가 고도의 과학 지식을 요구하는 폭탄을 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보이스 시즌2> 제작진은 8월 16일 OCN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최준호(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각종 국내외 연구에서 조현병과 폭력성은 관련이 없다고 드러났다”며 “조현병 환자는 발병 초기, 중기, 말기 모두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조현병 자체가 위험한 정신질환이라는 편견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장애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방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단장=윤석준 교수)은 ‘정신건강 언론보도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을 통해 437개의 제휴언론사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편견 조장 보도에 대한 정정 보도를 요청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측은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정신질환에 대한 표현 방식과 내용에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자는 ‘범죄자’…인식 개선 시급해

  사회적인 인식, 매체의 보도 횟수와 달리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현저히 낮다. 익명을 요구한 조현병 당사자는 “실제로는 범죄율이 높지 않은데 사람들이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2017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의하면 정신질환자 범죄 중 강력범죄 비중은 9.71%로 비정신질환자 강력범죄 비중인 1.46%보다 높다. 하지만 인원대비 전체 범죄율을 비교해보면 사실상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136%로 3.932%인 비정신질환자의 범죄율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윤호경 안산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언론에 보도되는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흉악 범죄 사건은 사실 극히 적다”며 “매일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지만, 언론은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만 유독 확대해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정신질환자 강력범죄 사건의 경우,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역사회의 관리에서 벗어난 환자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를 연계 받을 지역 내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어 지속적인 관리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7월 8일 영양군에서 경찰관을 살인한 조현병 환자도 영양군 내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어 퇴원 이후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윤석준(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환자가 미치료 또는 치료중단으로 재발하는 경우가 없도록 촘촘한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정(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료를 받는 조현병 환자들은 타인에게 위협을 주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적절한 조기치료가 가능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치료에 대한 법적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현병 당사자들은 범죄 위험을 가진 타인이 아니라 선량한 우리의 가족들”이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전환을 강조했다.

 

글 | 김예진 기자 sierra@

사진 | 조은비 기자 juliett@

김예진 기자  sierra@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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