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김정현이 섭식장애와 수면장애를 이유로 MBC 드라마 <시간>에서 하차하면서 섭식장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섭식장애 환자 수는 점차 증가해 작년에 8000명을 넘어섰다. 환자 중 80% 이상이 여성인 섭식장애는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위험하지만, 국내 치료기관은 부족한 상황이다.

 

비슷한 듯 다른 거식증과 폭식증

  섭식장애(Eating Disorder)란 식이행동 상 현저한 이상 증상을 보이는 장애를 뜻하며 식이장애나 식사장애로도 불린다. 여러 섭식장애 중에서도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거식증),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 폭식증), 폭식장애(Binge Eating Disorder)가 가장 대표적인 섭식장애다. 이식증, 되새김장애, 회피적·제한적 음식섭취장애 등도 이에 해당한다.

  거식증은 장기간 심각할 정도로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나타나는 질병으로, 주로 심각한 저체중과 무월경이 수반된다. 거식증은 제한형과 폭식·제거형 거식증으로 나뉜다. 제한형 거식증은 주로 단식이나 과도한 운동을 통해 저체중에 이르는 유형이다. 반면 폭식·제거형 거식증 환자들은 반복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했다가 다시 구토해서 저체중 증상에 이른다.

  폭식증은 단기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고 구토 등을 통해 체중 증가를 막으려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질환이다. 증상은 폭식·제거형 거식증과 유사하지만, 거식증 환자 대부분이 저체중인데 비해 폭식증 환자들은 정상체중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폭식증 환자 중엔 자신이 많은 음식을 먹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먹으려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거식증과 폭식증의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질병의 전체 증상이 아닌 일부 증상만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DSM-5 개정…폭식장애 분류 가능해져

  섭식장애를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명확한 진단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SM-5)>의 기준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에 따르고 있다. DSM-5의 이전 단계인 DSM-4에서는 섭식장애를 거식증과 폭식증, 비전형성 식이장애(Eating disorder not otherwise specified, EDNOS)로만 분류했다. 세 유형으로만 분류하다 보니 거식증과 폭식증의 진단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중증환자 대부분이 EDNOS로 진단돼 치료가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2013년 DSM-5로 개정되면서 EDNOS 환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던 폭식장애가 섭식장애 분류에 새롭게 추가됐다.

  DSM-5에 따르면 거식증 진단기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기준은 ‘필요한 양에 비해 지나치게 음식물 섭취를 제한해 현저한 저체중이 유발됐는지’ 여부다. 통상적으로 WHO 기준에 따라 BMI(Body Mass Index, 체질량지수) 17 이하는 고도의 저체중이라 판단한다. 저체중 여부 판단 시 연령과 성별, 발달 과정, 신체적인 건강 수준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체중만으로 거식증을 판단할 순 없기에 두 가지 기준을 더 충족해야 거식증으로 분류된다. 기준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는 체중이 증가하거나 살이 찌는 행위를 극도로 두려워해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한 지속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본인의 체중을 왜곡해 인식하는 증상을 보인다. 더불어 저체중의 심각성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김은영(동서울대 교양교육센터) 교수는 “거식증 환자는 실제로 마른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뚱뚱하다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임상적 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폭식증의 경우, 폭식 삽화의 반복 여부가 첫 번째 판단기준이다. 폭식 삽화란 일정 시간 동안 다른 사람보다 분명하게 많은 음식을 먹고, 먹는 것에 대한 조절 능력의 상실감을 느끼는 식이 행동이다. 하지만 폭식 삽화 증상만으로는 폭식증으로 진단되지 않고 폭식장애로 진단된다. 여기서 환자에게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한 반복적이고 부적절한 보상행동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에만 폭식증으로 인정된다. ‘연세 엘 식이장애 클리닉’ 송윤주 원장은 “환자가 구토하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는 경우, 이뇨제나 설사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경우를 부적절한 보상행동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폭식과 부적절한 보상행동이 3개월 동안 평균 주 1회 이상 일어나는 등 세 가지 기준이 추가적으로 충족돼야 폭식증 환자로 분류된다.

 

치료기관 늘리고 활발히 연구 진행해야

  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치사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거식증이 심해지면 저혈압, 부종, 무월경 등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한다. 백혈구 감소, 골다공증 등을 겪기도 하며 심한 경우엔 사망에 이른다. 폭식증의 경우에도 구토로 인한 식도염, 침샘감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정석훈 교수는 “영양 상태에 있어 문제가 있거나 내과적인 합병증이 심한 경우, 심각한 정신장애가 동반되어 있는 경우엔 입원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섭식장애의 치료에는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정신역동치료를 포함한 여러 방법이 함께 사용된다.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므로 치료 시에도 통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백상식이장애센터 안주란 센터장은 “기본적으로는 식사치료와 상담치료를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엔 가족치료도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섭식장애의 심각성과 환자의 특성에 따라 치료 강도도 다양하다. 김은영 교수는 “섭식장애 치료의 목표는 환자가 정상 체중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치료가 더 이상 필요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병원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섭식장애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데다 전문 치료기관도 부족한 실정이다. 조현병,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에 비해 섭식장애 위주의 상담기관과 클리닉센터 수는 현저히 적다. 송윤주 원장은 “우리나라는 섭식장애 전문 병원과 의료진이 매우 적어 치료 환경이 잘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섭식장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박연진 기자 oscar@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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