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는 연령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걸릴 수 있어서 섭식장애에 취약한 특성을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15~25세 여성이 가장 걸리기 쉽다. 이러한 섭식장애에는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유전적 요인 큰 영향, 가족 내 이환율 높아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유전이 대표적 원인이다. 섭식장애 환자 중 일부에게선 배고픔, 식욕, 소화 등을 관장하는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발견되어 왔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폭식증 발병 위험요인의 절반은 유전성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신경성 폭식증은 유전적 취약성이 있으며, 가족 내 이환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쌍생아 연구에 따르면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유전력 또한 58~76%에 이르며, 환자의 직계 가족들에게서 위험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적 요인이 어떻게 섭식장애와 연관되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또 하나의 생물학적 요인은 폭식성 섭식장애에 특히 해당되는 부분이다. 뇌의 보상체계와 위협에 대한 경고체계라는 상반되는 본능체계 사이 불균형으로 인해 음식갈망이 초래된다. 뇌는 섭식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는 혈당과 세포 내 당 수준, 그리고 장과 지방 세포가 분비하는 호르몬과 같은 신호를 통해 체내 환경을 감지한다. 뇌의 보상체계와 경고체계라는 이 두 체계는 아주 밀접하고 조화롭게 톱니바퀴처럼 연계되어 있는데, 어떤 이유로 두 시스템간의 균형이 깨지면 음식섭취에 대한 통제가 깨지게 된다. 예를 들어 피로함, 술, 우울함 등은 자기조절능력을 감소시키고 식욕과 음식에 대한 상상력을 날뛰게 할 수 있다. 특히, 굶기(예, 다이어트)를 반복한 경우 이 시스템이 잘 조절되지 못하여 포만과 갈망 간의 균형이 깨지게 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손상된 이 시스템을 재설정하기 위해서는 공복, 폭식, 영양 불균형으로부터의 치유과정을 통해 핵심 식욕조절 시스템의 재설정과 재보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몸무게를 건강한 범위 내에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BMI: 19-24). 표준 체중 이하에서는 먹고자 하는 강한 생물적 본능이 켜지고 뇌의 쾌락과 보상 시스템이 몹시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과도한 허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식사하여 음식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을 몸이 다시 배우게 해야 한다. 회복을 위해서는 소화관을 지나면서 영양분을 느리게 방출하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호르몬과 신경 신호들이 잘 작동하도록 해준다. 게다가 편안한 포만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심리적 요소인 자신감 부족은 섭식장애 환자들의 주된 특징이며, 섭식장애를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이는 완벽주의 성향, 성장 과정에서의 외로움, 자기 통제감의 저하 등으로 오는 불안감에서도 기인한다. 감정 조절에 미숙하거나 대인관계 기술이 부족한 경우, 성적 혹은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았거나 학창시절 놀림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 등 주변인과의 관계에 따라서도 섭식장애가 유발될 수 있다.

 

날씬함이 미의 기준…외모지상주의도 문제

  섭식장애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날씬함을 미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압박이 섭식장애 증가의 큰 원인이 된다. 이러한 사회 풍토는 잘 먹고 성장해야 할 어린이 및 2차 성징으로 급격한 신체 변화를 겪는 청소년이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 식단을 과도하게 조절하게 만들며, 자신의 본 모습에 대해 왜곡하여 지각하게 한다.

  실제 서태평양의 피지공화국에서 시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전통적으로 피지 사람들은 풍만한 몸매를 선호했고 체중을 줄여 날씬해지는 것은 권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1995년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서구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1998년에는 74%가 자신이 너무 뚱뚱하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69%는 다이어트를 하고, 11.3%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구토를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문화적 요인이 섭식장애에 뚜렷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입증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문화가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입사 시에는 외모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문제는 외모가 아무 상관없는 직종에서조차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구직하는 여성들은 업무에 필요한 기술과 실력을 익히기보다는 성형수술과 체중감량으로 취업을 준비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변화들이 있다. 깡마른 모델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스페인, 이스라엘, 이탈리아에 이어 2014년 프랑스 의회는 모델이 의사의 인증서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6개월 징역과 7만5000유로(한화 9627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 법안은 깡마른 모델을 따라 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3만에서 4만 명의 거식증 환자가 발생하는데, 이 중 대부분은 청소년이다. 영국 의회에서도 너무 마른 모델은 런웨이에 설 수 없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청소년기 ‘몸매 이야기’, 섭식장애 낳기도

  섭식장애는 많은 경우에 친구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촉발되기도 하며 특히 청소년들에서는 그러하다. 실제로 학교에서 몸매를 이유로 왕따를 당하거나, 혹은 친구들에게 몸무게를 빗대어 놀림당한 것을 계기로 심한 섭식장애가 진행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주고받는 ‘몸매 이야기’가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몸매 이야기’는 일반적으로는 자신이나 남의 외모에 대한 비난이지만, 긍정적인 언급이라 해도 듣는 사람에게 독을 품은 칭찬이 된다. 이는 ‘몸매 이야기’는 감정 또는 사회적 위치를 몸매에 대한 언급을 통해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래 사이에 만연한 외모에 관한 놀림, 몸매에 대한 언급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 몸매와 외모에 대한 불만족은 열등감, 우울증, 자존감 훼손, 섭식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성형수술, 운동기피 혹은 지나친 운동, 다이어트 약물남용, 흡연과 같은 위해하고 극단적인 체중감량 시도로 진행되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체형을 불만스러워 하는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기 시절의 외모와 몸매에 대한 불만족은 자존감 상실로 이어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당당한 주체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외모나 몸매를 언급하는 것은 과거 피부색에 관한 언급만큼 미개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는 이러한 몸매 이야기가 만연해 있다. 유전적인 요인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섭식장애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외모와 몸매에 대한 차별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섭식장애 예방문화의 확산이 필요한 때이다.

 

글|김율리(인제의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모즐리회복센터 소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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