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흙을 고른다, 손에 끼고 있는 장갑의 벨크로를 떼었다가 붙인다, 제자리에서 2회 점프하며 양발을 부딪친다, 헬멧을 벗어 냄새를 킁킁댄 후 다시 착용한다, 두 다리를 벌려 왼손으로 왼쪽 허벅지를 탁 친다, 야구 배트로 바닥에 직선을 긋는다, 허공에 연습스윙을 한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소속 베테랑 박한이가 타석에 들어선 뒤 투수가 초구를 던지기 전까지 하는 준비 동작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통 루틴(Routine)이라 한다. 대부분의 야구선수는 저마다의 루틴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신의 몸에 기억된 감각을 이끌어 최상의 운동 수행을 하기 위함이다.

 

  최적의 운동 상태 만드는 루틴

  루틴은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서 볼 수 있다. 선수 자신만의 고유한 동작이나 절차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스포츠 심리 기술이다. 야구에서는 포지션별로 루틴이 다르게 나타난다. 타자의 경우 타석에 들어서서 홈 플레이트를 야구 배트로 두드리거나, 헬멧을 쓰고 벗는 동작을 자주 볼 수 있다. 타석에서 루틴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박한이를 제외하고도 독특한 루틴으로 팬들에게 유명한 선수들이 있다. 타석에서 배트를 직각으로 세워 응시한 뒤에 어깨를 살짝 치는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 경기 내내 껌을 씹어 집중력을 높인다는 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대표적인 예다.

  투수의 루틴은 마운드 위에서 땅을 툭툭 차거나, 공을 던지기 전에 팔을 드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특이한 루틴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선수는 KIA 타이거즈의 정용운이다. 정용운은 투구 전에 공을 잡아 쭉 펴진 팔을 든 후에야 초구를 던진다. 이러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루틴에 대해 스포츠 전문가들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장덕선(한국체육대 체육학과) 교수는 “타자의 루틴은 투수를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하고, 투수의 루틴은 타자의 집중력을 교란시키는 효과를 준다”며 “경기 과정에서의 동작 외에도 경기장 안팎에서 다양한 행위들이 루틴에 넓게 포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십자가 그리는 타자…대학리그는 제재 엄격해

  대학야구에서도 드물지만 자신만의 루틴을 행하는 선수들이 있다. 고려대 김성수(사범대 체교17, 외야수)는 타석에서 배트로 십자가를 그린 후 허공을 향해 배트를 한번 뻗는 준비 동작을 한다. 기독교 신자인 김성수는 “종교적 신앙이 시합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으로 언제나 같은 루틴을 행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에 비해 대학야구 같은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개성 있는 루틴을 쉽사리 보기 힘들다. 시간 제약이 있는 대학야구 경기 특성상, 루틴이 시간을 끄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양섭(사범대 체교14, 투수)은 “보통 대학야구에서는 조금 긴 루틴이나 특이한 루틴을 하게 되면 심판이 시간을 오래 끌지 말라며 제재한다”며 “경기장 안에서 루틴을 가져가기 쉽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대학 선수들은 주로 경기장 밖에서 자신만의 루틴으로 최상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경기가 있는 날 아침이면 반드시 샤워를 한다는 최수현(사범대 체교15, 2루수)은 “심신이 단정하지 않으면 시합에서 불안해지는 것 같다”며 “경기 당일 아침에 반드시 샤워를 하고 채비를 깔끔히 해서 경기 전부터 심리적 안정을 얻은 상태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대학 리그에서 루틴에 대한 제재가 엄격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운동 수행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루틴에 제한을 둠으로써 선수들의 기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야구부 김호근 감독은 “불필요한 제재로 기량 성장에 중요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루틴을 막아선 안 된다”며 “대학에 와서도 선수들을 획일화시키면 고등학교 시절 실력에서 진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 박성수 기자 yan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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