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의 한문교육은 왠지 낯설다. 한글 탄생의 역사적 의미와 한글의 수난도 기억해야하지만, 한글과 역사적 관계를 지닌 한문의 존재와 한문교육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나라의 공식표기는 한문이었지만, 1894년 개혁의 일환으로 언문(한글)이 나라의 문자로 격상되었다. 근대계몽기에는 한문을 ‘봉건성/비합리성/비과학성/늙음’의 상징으로, 한글을 ‘근대성/합리성/과학성/젊음’ 등으로 덧씌우고 한글과 한문을 대립 항으로 등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의 내셔널리티 성립과정에서 배척의 대상으로 한문을 호출하였다. 이어진 해방 공간에서도 사회 통합과 식민지 청산, 그리고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하여 남북한 모두 오직 한글만을 ‘민족’과 식민지 극복의 기제로 활용하였다. 우리의 어문 정책은 1948년에 제정한 한글전용 정책을 거쳐 2005년의 국어기본법으로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문교육이 있을 자리는 없었고, 공교육조차 한문교육을 안 해도 그만인 것으로 치부하였다.

  한문교육은 거시적으로 정신문화의 계승과 관련이 깊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문과 한문이 생성한 문화와 접하며 살고 있다. 한문교육은 한글 어휘의 이해를 위한 한자지식에만 가둘 수 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한문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사유한다. 더러 한문 표상을 통해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거나 한문과 한글을 넘나들며 사유하면서 문화적 자산을 창신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글과 한문의 만남 속에서 사유와 시각의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다. 문화융합의 시대에 한글과 한문이 교섭하는 경험을 내부에 간직하는 것은 우리 안에 문화융합과 생성의 도구를 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차원은 사회에서의 어문생활과 공교육에서의 한문이다. 공교육에서의 한문은 독립교과로 존재하면서 한글전용에 기여하는가 하면 다양한 교과목에 존재하는 개념어와 어휘의 정확한 이해를 위한 도구적 역할도 자임한다. 많은 한글 어휘의 어원이 한문과 관련되기에, 한문교육 없이는 한글 어휘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은 불가능하다. 이와 함께 사회의 어문생활에서도 한문 수요도 있지만, 이는 공교육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공교육에서의 한문교육은 중등교육이 추구하는 교육목표와 인재상은 물론 시민의식의 함양과 연결된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한문 수요는 경제적 효용성과 일국 밖의 사정과 관련이 많다. 이 둘을 뒤섞어 한문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초점을 흐리게 한다. 둘의 목표는 같지만 방향과 방법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간의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의 논쟁도 공교육과 사회적 요구를 뒤섞어 논의한 것에서 발생하였다. 주지하듯이 언어의 사회적 수요는 경제적 효용가치와 관련이 깊다. 일종의 시장성이다. 시장성은 문자를 포함한 표기체계를 사용하는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에 따라 상품가치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영어사용과 중국어의 수요는 그 사례다. 사회에서의 한문 수요도 바로 이 시장성을 근거로 한다. 이때의 한문표기는 시장성의 요구에 따라 간체자나 국한문혼용으로 쓰더라도 무방하다.

  한글이 공식 표기로 통용한 것은 1894년 이후 이제 120년이 조금 지났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한자(한문)의 위상은 여전하다. 오랜 시간 동아시아 시공간에서 생성된 한자 어휘는 한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우리가 한글을 사용한 기간과 사용한 사람의 규모를 고려하면 한글 어휘가 한자 어휘를 넘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도 한자 표기방식을 한글로 바꾸었을 뿐, 한자 어휘를 모두 한글로 담지 못한다. 단순한 표기방식의 전환을 넘어 한자의 의미를 한글로 전환하는 것은 먼 시간을 요하는 한글전용이 추구해야할 최종목표 중의 하나다. 이는 한글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표기체계라는 사실과 한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공교육에서 한글이 풍부한 어휘력과 자생력을 가질 때까지, 한글전용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이다. 중·고등학교에서 독립과목으로 ‘한문’을 가르치는 것도 한글 전용을 착근하기 위한 방안이다. 따라서 뜻깊은 한글날에 한글 전용의 완성을 위하여 한문 교육을 어떻게 강화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만시지탄이 아닐까?

 

글 |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한문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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