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삼촌이 찾아와 별안간 엄마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 갔다. “뭘 하고 다니기에 기름값이 없냐”며 엄마가 묻자, 삼촌은 민망하게 웃어 보였다. “일 해주고 돈을 못 받았어. 고마워 누나.” 그 날 저녁 잘 들어갔냐는 연락에 두 해가 넘도록 삼촌은 답이 없었다. 돈을 갚지 못한 걸 마음에 쓰는 것 같다며 엄마는 못내 아쉬워했다.

  올해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삼촌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 엄마에게 돈을 빌리던 날 삼촌은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사업주가 있는 회식 자리에 갔다. 사업주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고, 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다. 삼촌은 화를 참지 못하고, 한껏 술에 취해 이죽거리는 그를 술병으로 내려쳤다. 연락두절된 시간만큼 수감 돼 있었다고 했다.

  삼촌은 알고 있었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을 해야 한다. 임금체불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선 회사에 자료를 요구해야 한다.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시정지시가 내려져도 이행 여부는 사업주에게 달렸다. 사업주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겠지만 임금을 받는 건 다른 문제다.

  임금을 받고 싶다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발급하는 확인서를 들고 법원에 가야 한다. 임금청구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가압류를 걸 수 있다. 하지만 가압류는 사장 개인이 아닌 회사에 걸게 돼 회사 재무상황에 따라 돌려받는 임금액수가 달라진다.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노동자들이 소송에 진을 빼는 모습을 삼촌은 계속 봐왔다. 기름값도 없는 삼촌에게 소송은 선택지에 없었다. 힘겹게 얘기하는 삼촌을 보며 엄마와 나는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이번 추석에도 뉴스의 앞머리에는 체불 임금 총액과 임금체불 사업장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소식이 차지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임금체불액은 1조 1274억 원으로, 작년 임금체불 총액의 80%를 넘는 수준이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로 근로자가 받는 권리다. 노동존중 사회를 외치지만,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에게 법은 아직도 멀리 있다. 다가오는 설 명절에는 임금체불 총액도 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도 조금 줄어있기를 바란다.

 

글 | 엄지현 기자 al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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