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교육평가기관인 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Times Higher Education: THE)이 2018년도 세계대학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예술‧인문 분야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대학은 예상과 달리 하버드대학도, 케임브리지대학도 아니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자리 잡은 스탠퍼드대학과 공학으로 유명한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 대학은 IT나 공학이 인문학과 손을 잡을 때 더 의미와 가치가 높아진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스탠퍼드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주 진입로인 팜 드라이브를 따라 심어 놓은 야자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캠퍼스의 중핵을 이루는 메인 쿼드(Main quad)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스페인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연황색 벽과 붉은 지붕의 건물이 무척 아름다웠다. 설립자 릴런드 스탠퍼드는 ‘교양 있고 유능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스탠퍼드대학을 세웠다는데, 학부 졸업생의 63%가 문리대(School of Humanities and Sciences) 출신이라는 사실에서도 그러한 교육이념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지난 2005년에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동문이 아니면서도 졸업축하연설을 했던 것은 이 대학이 실리콘 밸리에 터를 잡고 여러 IT기업의 설립자를 배출해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스탠퍼드대학의 특성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스티브 잡스는 그 연설에서 IT 관련 이야기 못지않게 인문학적인 주제를 폭넓게 다루었다. 그는 인생의 전환점, 사랑과 상실, 죽음 등을 화제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인생을 살면서 배가 고프고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 연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기술과 인문학이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스탠퍼드대학의 교육이념이 이후로도 스티브 잡스에 의해 더 널리 홍보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2011년 아이패드2 출시 행사에서 기술(Technology)과 인문학(Liberal Arts)이 교차된 도로표지판을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애플의 DNA에 있습니다. 기술과 인문학이 결합되어야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가 도움이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애플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의 혁신에 깊은 인간애(humanity)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잡스의 말을 인용했다. 컴퓨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기에 매킨토시 개발자 가운데 상당수는 시인이나 음악가로도 성공할 만한 사람들이었다고도 했다. 여기에 덧붙여 마이크로소프트의 DNA에는 인간애와 인문학이 존재하지 않아 매킨토시 컴퓨터를 보고도 그것을 이해하거나 모방하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8 인문정신문화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8%가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응답하면서 ‘인간 본연의 문제를 다루며 삶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이는 죽음이라는 스위치로 인간의 삶이 순간 꺼지는 것 같아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기 꺼려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고백에 나타난 인문학적 성찰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필요성과는 달리 인문학에 대한 전반적 관심은 크게 높지 않다. 특히 50대 이상(35%)에 비해 20대(24%)의 관심도가 현저히 낮아 기술과 인문학이 조화롭게 결합되어야 할 미래사회에 우려를 금치 못하게 된다.

  우리 대학이 스탠퍼드대학처럼 인문학 발전에 더 야심차게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도 아쉽게 느껴진다. 현재 수행하고 있는 대학인문역량 강화사업(CORE)도 내년 2월로 3년 사업이 종료되고 나면 이후가 막연하건만, 서울캠퍼스 백주년기념관 맞은편에서는 타워 크레인이 인문이 빠진 미래를 쌓아 올리느라 분주하다. 기술과 결합되어야 할 인문이 도외시된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김준연 문과대 교수·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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