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은이), 김상훈 (옮긴이) | 엘리 | 2016-10-14 | 원제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2002년)

  테드 창의 단편에 등장하는 ‘칼리’를 장착하게 되면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시각을 없앤다는 말은 아니다. 이 사람이 눈이 크다던지 코가 높다던지 입이 작다던지 등 객관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다. 칼리가 바꾸는 것은 그 이후이다. “이 사람의 큰 눈이 아름답구나.” 혹은 “이 사람은 입이 작은 것이 못생겼다.” 등 외모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없애는 것이다. 김태희 볼 때와 옆집 아주머니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 다 동일한 것이다.

  처음엔 ‘칼리’가 있으면 굉장히 세상이 평화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외모만으로 사람들은 상대방과 친해질지 아닐지를 판별한다. 외모가 괜찮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대체로 쉽고 연애에 있어서 더 나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외모가 우월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이러한 면에서 칼리는 ‘외모’라는 비합리적인 잣대를 없애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외모라는 잣대를 없앤다고 해서 잣대가 완전히 사라질까? 텍스트에 따르자면 칼리에 대한 논란 이후 사람들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 외에도 학벌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등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차별한다. ‘나쁜 것’은 외모나 학벌, 재력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특성일 뿐이다. 나쁜 것은 이러한 특성을 비합리적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개개인을 평등화하는 것보단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는 행위를 지양하는 것이 먼저이다.

  첫인상이 꽤 중요하고 꽤 오래간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첫인상의 노예가 아니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면 그 사람의 새로운 매력이나 흠을 발견하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여도 성격이 좋지 않다거나 별다른 매력이 없어서 오는 사람도 걸음걸이를 돌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엔 못생겼던 외모도 성격이 좋거나 다른 매력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평가 기준이 만연한 이 사회지만 사람들은 칼리가 없어도 충분히 상대방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책의 주인공 타메라는 게릿과 고등학교 때 사귀었다. 타메라는 예쁘고 게릿은 못생겼지만 둘의 연애가 가능했던 건 칼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리를 제거한 후에도 타메라는 계속 게릿을 좋아한다. 사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막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상형에 한참 못 미친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면 그 사람의 못난 얼굴도 1초 박보검으로 보이고 그의 깨는 목소리는 김범수와 비슷하게 들리고 낮은 학력은 백치미로 여겨진다. 이런 사랑이라면 우리도 타메라와 게릿처럼 칼리를 장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박수현(화공생명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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