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님들의 모교사랑, 후배사랑에는 크기가 없습니다.’ 본교 교우회의 캐치프레이즈다. 1907년 교우회가 설립되고 이후 장학회가 운영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교우회 장학금의 도움을 받아 꿈을 만들어왔다. 넘치는 사랑으로 학생들을 든든히 지원하고 있는 교우회 장학금은 “후배들만큼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길 바란다”는 곽진(산업경영공학과 70학번) 교우의 총괄아래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깡으로 버텨낸 청춘, 키다리 아저씨가 되다

  곽진 교우는 자신의 유년 시절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공장을 하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화재가 발생했어요. 사업이 완전히 망해버렸죠.” 가세가 점점 기울자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사친회비조차 내지 못해 납부를 독촉 당하게 됐다. “그 당시 사친회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은 수업을 들을 수가 없어 교문 밖으로 나가 있는 벌을 받아야 했어요.” 8남매를 뒷바라지하는 부모님께 차마 돈을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는 교문 밖을 나가 서성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던 서무주임 선생님이 앞으로 사친회비를 내지 못하더라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그분의 묵과 아래 3년 동안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참 감사한 분이시죠.”

  그렇게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친척들을 가르치며 월사금을 냈다. “어떻게든 집안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대학 진학은 미루고 사업부터 시작했어요.” 세가 싼 곳을 빌려 학원을 시작했고 그 후 당구장과 탁구장을 차려 돈을 벌었다. 그래도 쉬이 좋아지지 않는 집안 사정을 보며 그는 학비가 싼 국립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국립대에 떨어진 거예요. 그래서 대학은 안 가야겠다며 사업에 몰두하려 했죠.”

  하지만 이러한 결심은 양친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배움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응시했던 고려대 입학시험에 덜컥 붙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지만, 학비를 벌기 위한 노동의 시간은 계속됐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은 그가 ‘집안이 어려운 후배들과 몸이 온전치 않은 이들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우연히 동참하게 된 맨투맨 장학금

  대학 졸업 후 경력을 쌓아 시작한 사업이 번창하면서 곽진 교우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장학금 사업을 접하게 됐다. “2002년 한 경제인 모임에 참석했어요. 우연히 그 자리에서 당시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고 계시던 구두회 전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뵀죠.”

  구 회장은 동석한 인사들에게 ‘새로운 장학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개인이 장학금으로 얼마를 내든지 간에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는데, 구 회장이 제안한 맨투맨 장학금(현재는 ‘개인명의 장학금’으로 개칭됨)은 기부자에게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기부자와 수혜자가 단순히 장학금을 주고받는 사이를 넘어 멘토와 멘티 관계가 된다는 취지가 정말 좋았어요. 흔쾌히 동참하겠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죠.”

  그때만 해도 회사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지만 후배들은 꼭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던 곽 교우는 2002년도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단 한 학기도 장학금 후원을 멈춘 적이 없다. 장학위원장이 된 후엔 2명씩 후원하고 있다. 학생 1명당 1년에 400만 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장기간 꾸준히 후원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장학위원장을 맡은 지 어느덧 3년째입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배울 수 있도록

  장학위원회는 매 학기 장학금과 관련된 회의를 한다. 교우회 장학금 종류에는 교우자녀, 모교추천, 개인명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각각 조건과 선발하는 인원은 다르지만 최우선 고려사항은 집안 환경이다. 집안이 어려운 학생은 생활비도 벌어야하기에 학업에만 몰두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지원을 먼저 해 주어야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겠어요? 그게 장학생을 선발할 때 집안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유입니다.”

  세 가지 유형 중 개인 장학금의 규모가 제일 크다. 2018학년도 1학기 기준 9억 3000만 원 가량이 지급됐다. 그러다보니 곽진 교우가 장학위원장으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새로운 기부자의 창출이다. “하던 사람은 계속 해요. 그러니 기존에 기부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학생 후원을 추천하며 가지를 뻗어 나가야 해요.” 물론 강요는 하지 않는다. 형편이 되는 대로 기부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원칙이다.

  곽진 교우는 장학위원회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보낸 손편지라고 했다. “제가 개인명의 장학금을 준 후배들이 한 20명 정도 돼요. 이 친구들에게 손편지가 올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외국에서 편지를 쓴 학생도 있고, 장학금을 받고 취직할 때까지 편지로 소식을 전하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학생도 있었다. “그런 추억들이 있기 때문에 후원하는 학생들을 잘 바꾸지 않아요. 예외인 학생이 몇 있었는데, 성적이 너무 좋지 않은 경우예요.”

  교우회 장학금에 있어서 우선요소가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 학업에 집중하도록 돕는다는 장학금의 의의를 고민하게 된다. “저는 장학금을 주면서 큰 걸 바라지 않아요. 직접 적은 손편지, 하다못해 감사인사 한 번이라도 들으면 그걸로 충분해요.”

베풂과 나눔의 선순환에 함께하기를

  “선배가 후배들한테 베풀고 나누는 거지 따로 대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학생들이 자신의 후배들에게도 다시 베풀길 바라고 있습니다.” 곽진 교우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여유가 생기면 나눔을 실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단 너무 여유로워질 때까지 미뤄서는 안 됩니다. 완전한 여유란 건 없기에 적당한 시점부터 후배,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베풀고 나눠야 해요.”

  일상적으로 꾸준히 행하는 나눔의 힘을 믿는다는 곽 교우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학업 지원을 위한 장학금에서 더 나아가 생활비 지원 장학금도 새롭게 구상하고 있다. 집이 어려운 학생들이 따로 아르바이트에 매달리지 않고도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미 1억 원 가량의 기금을 모았다. 바쁜 와중에도 곽진 교우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장학금을 더 줄 수 있을까 고민이 크다.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것뿐이야.”

 

글 | 이다솜 기자 romeo@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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