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 단지 내 어린이집이 있다. “안녕하세여!” 아이들이 인사를 건넨다. 다시 푹 숙이고 흙놀이에 전념하는 올망졸망한 뒤통수도 예뻤지만 그 뒤를 분주히 오가며 ‘땡땡아! 땡땡아!’를 찾는 젊은 교사가 그날은 더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완주의 한 유치원에서의 아동 학대가 포털뉴스 메인에 올라왔다. 아이를 세워 넘어뜨리고 쥐어박기를 수차례 했단다. 유치원 측은 학대 정황을 미처 알지 못했다며 사과 후 해당 교사를 해고했다. 아마 아이 마음속엔 지우기 힘든 상처가 새겨졌을 게다.

  가해자에겐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어야 하지만 보육교사란 직업 자체를 향한 편견이 확산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반복해서 올라오는 유사한 아동학대 기사들이 꽤 큰 몫을 해낸다. 각 기사의 날짜와 장소는 바뀌었어도 학대 장면이 담긴 CCTV 캡쳐 이미지와 생생한 상황묘사는 어디서든 빠지지 않는다.

  기사만 보면 모든 아동학대는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발표한 <2017 전국아동학대현황>에 따르면 아동학대 10건 중 8건은 가정에 의해서 일어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각각 3.7%, 1.2%에 그쳤다. 어린이집 아동학대처럼 이목을 끄는 이슈에선 기자들의 집단적 사고가 돋보인다. 같은 주제를 설정하고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패거리 저널리즘(pack journalism)’이다.

  이때 상황 진단도 간편히 내려진다.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보육교사 교육 강화, 인력 확대, 교사 처우 개선 등 ‘보육의 질’을 높이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멘트로 갈음하면 된다. 마치 달달 외운 답을 질문도 안 보고 써 내는 모양새다. 해결이 난망한 이유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음은 2012년과 같은 내용을 써 내린 엊그제 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니 한 교사 당 원아 수나 최저임금을 간신히 상회하는 임금, 빡빡한 근무시간 수치로 나타나는 그들의 열악한 환경은 그저 투정처럼 스쳐지나갈 법하다.

  결국 남은 건 불신이다. 요즘 부모들이 아이 가방에 챙겨 보낸다는 휴대용 녹음기에서 날선 마음이 전해진다. 그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실체보다 커진 불신이 안타깝다. 편견은 그렇게 시나브로 심화되고 고착된다. 귀기울이는 이들은 줄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소식에 움츠러든 보육교사들에게 전하고 싶다. 오늘도 ‘땡땡이’들로 버티는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괜찮다고, 또 다른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글 | 박규리 사회부장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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