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실익 두고 논란 중인 비동의 간음죄 도입

김예진 기자l승인2018.10.18l수정2018.10.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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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전 지사의 공판 이후 그에 대한 유죄 판결 촉구는 법안 발의로까지 이어졌다. 9월 6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을 필두로 13명의 여야 의원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형법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법학자들은 두터운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논의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전반적인 형법 규정 체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아직 부족하단 입장이다.

 

  ‘비동의 간음죄’ 정의 아직 모호해

  비동의 간음죄의 핵심은 일명 ‘No means No rule’(노 민스 노 룰)이다. ‘폭행 및 협박’이 없이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간음 행위일 경우 강간죄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발의된 개정안에선 ‘Yes means Yes Rule (예스 민스 예스 룰)’을 포함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관계에서는 명시적 동의 없이 간음한 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간음죄를 저지른 사람은 적용되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비동의 간음죄가 신설될 경우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폭행 또는 협박 여부에서 동의·비동의 여부로 바뀐다. ‘비동의’란 명시적으로 거부했거나 묵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형법학계는 당사자 내심의 동의·비동의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는 데 대체로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원은 “묵시적인 비동의에는 비언어적인 표현이 더 많을 것”이라며 “소리의 표현, 얼굴 표정, 특정한 몸짓의 비언어적 표현을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구성요건이 모호해져서 해당 범죄의 미수나 과실 인정 여부도 불투명해진다. 형법 제13조에 따라 과실행위를 처벌하는 예외 규정을 제외하곤 죄의 성립요소를 인식한 고의행위만 처벌되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유근 연구원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착각한 경우엔 고의성이 조각돼 처벌하기 어렵다”며 “이처럼 이론적인 문제에 불과해 보여도 법 적용 시 부딪치게 될 지점들이 많다”고 말했다.

  입증책임의 문제에 대해선 입장 엇갈려

  비동의 간음죄 도입 시 검사는 당사자들의 사건 전후 행위나 주변 상황 등의 정황증거를 통해 피해자의 명시적, 묵시적 비동의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이 피해자의 의사 표시가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경우 가해자의 고의가 성립된다.

  전문가들은 입증책임의 정도를 두고 비동의 간음죄의 실익을 다르게 평가했다. 김유근 연구원은 “비동의 간음죄가 신설되더라도 입증 책임의 정도가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검사가 피해자의 비동의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태훈(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을 입증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강간죄보다 가벼운 법정형의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할 시 해석상 실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허위 고소, 무고죄 등의 문제도 제기된다. 피해자의 거부의사표시에 대한 입증을 오직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다. 피해자가 비동의를 주장해 수사가 진행되던 중 동의가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발견돼 피해자가 무고죄로 처벌된 사례도 있었다.

  동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현재보다 더 피해자의 주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피해자 개인에게 형사책임 문제가 과도하게 귀속될 위험도 내재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윤석 부장검사는 “비동의 요건이 도입된다면, 피해자의 동의 없음 내지 피고인의 피해자 동의 주장을 둘러싸고 이를 입증하기 위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게 될 2차 피해를 최소할 수 있는 절차적 보호장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확실한 실익 위해 면밀히 검토해야

  전문가들도 성폭력 형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비판적인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통해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김유근 연구원은 “전체 사회의 인식변화에 주는 파급효과도 클 것”이라며 “비단 성관계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여성의 의사를 존중하는 풍토와 양성평등에 대한 관념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간죄 피해자 보호 강화의 실익도 기대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형사법제연구실장은 “피해자가 두려움에 의해 저항 없이 소극적으로 간음행위를 한 경우와 같이 현행 형법상 강간죄 처벌 공백을 메꾸는 데 실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성범죄 관련 법을 전면 개정한 영국을 비롯해 독일, 미국의 일부 주 등은 비동의 간음을 비동의 간음죄로 규정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5월부터 비동의 간음죄 처벌 규정이 시행됐다.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학계의 찬반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한균 형사법제연구실장은 “영국사회에선 성적 동의(Sexual Consent) 개념에 대한 혼란이 여전해 비동의 간음죄가 실익이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균 형사법제연구실장은 “영국이 2003년에 정한 비동의 요건은 이미 현행 한국형법에서 강간 또는 준강간죄에 적용되는 경우라 참고하기도 어렵다”며 “선진국이 도입했다고 해서 비동의 간음죄를 당연히 도입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2015년 12월 발생한 쾰른 집단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2016년 ‘No means No’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강간죄 규정한 형법개정안이 통과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정연 연구원은 “기존 형법 체계에 대한 논의 없이 급하게 이뤄진 독일 개정형법은 성범죄에 대한 처벌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미투 운동이라는 사회적 사건을 계기로 급하게 논의가 시작된 만큼 더욱 꼼꼼히 검토해야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동의 간음죄를 일반적 규정으로 새롭게 신설하기보다 보충적 규정으로서 도입하는 것을 제시했다. 강간죄 일반 구성요건으로 변경할 시 현행 형법 규정 체계와의 충돌이 있을 수도 있어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원은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지 않고 강간죄 구성요건을 넓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다”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볼 때”라고 말했다. 김정연 연구원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 및 도입은 전반적인 형법 규정 체계와 성범죄에 대한 규정을 면밀히 검토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 김예진 기자 sierra@

그래픽 | 이지혜 디자이너

 

김예진 기자  sierra@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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