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오픈 월드라는 말은 마치 실제로 자신이 가상의 세계를 직접 돌아다니며 우연의 모험 사이를 탐사하는 듯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을 가리킨다. 다만 시나리오를 따르는 방식에 비해 오픈월드의 넓은 세계를 구현하는 데에는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두터운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트리플 에이(AAA)급이라고 불리는 게임 중 오픈 월드로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게임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 일명 ‘GTA’시리즈일 것이다.

  SNL등의 방송에서도 게임 패러디로 등장하면서 게이머들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폭넓은 인지도를 보유한 ‘GTA’시리즈는 높은 완성도, 탄탄한 캐릭터와 시나리오, 다채로운 게임 속 활동 등을 통해 오픈월드 게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수많은 차량들을 직접 운전할 수 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강도질(!)을 할 수도 있으며 레이싱, 골프, 요가나 테니스까지도 게임 안에서 즐겨볼 수 있을 정도로 ‘GTA’가 구현한 오픈월드의 재현력은 경이롭다.

  그러나 그런 ‘GTA’도 구현하지 못하는, 혹은 구현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다른 모든 콘텐츠들이 그러하듯이, 특정한 콘텐츠가 어떤 대상을 구현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는 콘텐츠 자체의 한계로부터도 기인하지만 때로는 의도적인 결과일 수도 있으며, 이 둘이 동시에 섞여있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GTA’가 미처 그려내지 않은, 혹은 담아내지 못한 무언가를 살피는 것도 그래서 꽤나 흥미로운 탐색지점이 된다.

  기술적인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은 이를 테면 게임 속의 건물들이 대표적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GTA’ 시리즈를 상징하는 모토이기도 하지만, 게임 속 대부분의 건물들은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다. 이는 기술적 한계인데, 등장하는 모든 건물의 내부를 일일이 다 그려냈다간 데이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특정 건물을 못 들어간다는 사실이 그리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 도시의 건물들이 개인에게는 대체로 자신과 무관한 건물이라는 현실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기술적 한계로 건물 내부는 만들지 못하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도 대부분의 건물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게임 속 건물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기술적 한계의 의미가 위와 같다면, ‘GTA’가 일부러 그려내지 않은 요소 하나는 아동이다. 상당한 수위의 폭력과 선정성으로 알려진 ‘GTA’에는 아동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도시를 그려내는 데 있어 어린이가 없다니? 이 이상한 묘사는 아동에 대한 폭력 묘사를 봉쇄하기 위함이다.

  게임 속 누구라도 공격할 수 있는 게임의 자유로움으로부터 아동은 완전히 격리된다. 아동을 향한 공격을 임의로 막는 방식이 아니라 ‘GTA’는 아예 게임 안에 아동의 등장을 없애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이러한 연출은 아무리 선정적인 게임이더라도 사회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한도 안쪽에 머무르고자 하는 노력임과 동시에 역으로 어떤 경우에도 게임 안에서 ‘이 대상은 공격할 수 없습니다’ 와 같은 인위적인 흐름 방해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의도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는 지점이 가장 놀라운 지점인데, ‘GTA’의 그래픽 설정 옵션에는 다른 게임에서 보기 드문 ‘인종적 다양성 설정’ 이라는 옵션이 있다. 이 옵션을 최대로 할 경우 게임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다 다양한 인종의 형태로 나타나고, 옵션을 낮게 설정하면 그저 흑인, 백인과 같은 단순한 프로토타입으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서구중심적 시각에 대한 자성의 시대인지라 많은 콘텐츠들은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곳곳에 기울인다. 그런데 PC게임과 같은 영역에서 이는 또다른 한계를 만나는데, PC사양이 좋지 않을 경우 이러한 다양성을 표현하는 데 상당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낮은 사양의 PC에서는 다양한 인종표현에 들어가는 자원을 쉽게 감당하지 못해 게임이 느려지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술적 한계와 표현의 의도가 교묘하게 타협하는 결과는 게임 ‘GTA’안에서 인종적 다양성의 구현을 게임 옵션으로 조정하도록 하는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시대정신이 가리키는 지점과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있어 발생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GTA’의 이 독특한 다양성 설정 옵션은 여러 모로 동시대의 다른 문화콘텐츠들까지도 돌아보게 만드는, 생각보다 두터운 이야기를 내포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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