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4만원도 안하는 걸 7년 전에 7~8만원 주고 샀다”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 운영팀이 3월 15일에 올린 ‘좋은고잠 프로젝트’ 첫 공지글에 달렸던 댓글이다. 우리가 흔히 ‘과잠’ 혹은 ‘고잠’이라고 부르는 학교 야구잠바는 대학생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고잠은 보통 학과 차원에서 공동구매를 하지만 올해부터 고파스 운영팀에서도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학생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9월 27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요청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법인의 상표관리규정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문과대 17학번인 A 씨는 “학생들이 입는 고잠인데 상표권을 따지는 게 너무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며 “원칙은 원칙이지만 어차피 다른 비싼 공동구매로 구매하게 될 텐데 고파스만 막는 건 효과가 없어보인다”고 불만을 표했다.

 

  상표관리규정에 막힌 고파스 ‘좋은고잠’

  본교를 상징하는 큼지막한 호랑이 로고와 ‘KOREA’라는 글씨는 고잠의 필수 요소다. 대부분 학과가 두 요소가 포함된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고파스 좋은고잠’(이하 좋은고잠)도 이 보편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다. 좋은고잠은 구매 창구의 일원화, 디자인 통일, 마진 제거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됐다. 많은 학생들의 호평도 잇따랐다. 학생들이 고파스에서 개인 차원으로 수요조사를 하고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고파스의 사업자명인 ‘웨이크컴퍼니’가 나서서 공동구매를 진행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올해 1학기에는 계획대로 공동구매가 이뤄졌지만 9월 27일 학교 법인의 요청으로 공동구매가 중단됐다. 법인 측에서 ‘학교 법인 고려중앙학원 상표관리 규정’ 제3장 ‘상표의 사용허락 및 사용료’에 따라 판매 중단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좋은고잠 등 부분에 호랑이 심벌을 넣은 것이 위 규정에 어긋났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고파스 측은 법인에 정식으로 상표사용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이후 10월 1일 법인으로부터 받은 상표사용 심의 결과는 ‘미승인’이었다. 고려중앙학원 사업팀 은희성 직원은 “본교 단체복과 관련된 상표사용신청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모두 미승인된 바 있다”며 “예전 신청 사례와 비교해봤을 때 고파스에서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단체복 구입이 학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미승인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에 고파스 측은 “법인의 심의 결과를 존중하지만 기존 고잠에 비해 저렴해 학우들의 경제적 부담을 오히려 덜어줄 수 있기에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이후 고파스 측은 호랑이 로고 없이 ‘KOREA’만 남아있는 수정된 시안을 내놨다. 하지만 고파스 운영팀은 “고잠이 대부분 유니폼 혹은 교복과 같은 역할임을 감안할 때 호랑이 로고가 없는 고잠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디자인 변경 후 주문 신청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문제는 개인차원의 공동구매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고, 이용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본교 로고를 이용하는 과잠 판매업체들도 있다는 점이다. 해당 규정의 실효성과 일관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경영대 18학번인 B 씨는 “모든 전교생에게 고잠 착용을 금지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고잠 문화를 인정한다면 학생들이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상표 대한 학생의 인식은 아직까지

  암묵적으로 적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과잠에 들어가는 호랑이 로고가 원칙적으로 상표관리규정에 위배된다는 점을 학생들은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학교의 로고나 상징도 상표권의 영역에 포함된다. 불어불문학과의 2학기 학번대표로서 학생회 차원의 과잠 공동구매를 이끌었던 손용현(문과대 불문18) 씨는 “공동구매 과정에서 상표관리규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며 “상표권이 일반상품 브랜드에 관련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왕기문 사회학과 학생회장은 “학생회 차원에서 과잠을 맞출 때 상표권에 대한 인식은 솔직히 없었다”며 “고대 기념품의 라이센스를 가진 법인으로서 고파스 단속 조치가 이해는 된다”고 답했다.

  ‘고려중앙학원 상표관리 규정’의 제3장 8조에 의하면 상표를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영리적 또는 비영리적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법인에 사용허락을 신청해야 한다. 고파스 운영팀의 비영리적 공동구매뿐만 아니라 학생회 차원의 소규모 공동구매도 원칙적으로 법인의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은희성 직원은 “학생들이 소규모로 진행하는 공동구매는 다 적발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번 고파스 사례와 같은 단속은 제3자의 제보에 의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정당한 상표사용 신청 절차는?

  고려중앙학원의 상표를 사용하는 것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법인은 상표사용의 목적, 주체, 품질, 법인에게 상품이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사용허락을 결정한다. 주류, 담배, 도박, 총 검류 등의 제품에는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종교적, 성적 상품, 이외에 법인의 명성 또는 신용을 저해하거나 훼손할 우려가 있는 상품은 사용을 제한한다. 하지만 산하기관 구성원이 통상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명함, 문서 등의 업무용 사무용품에 상표를 부착하는 경우, 구성원 또는 재학생이 봉사활동 등 비영리를 목적으로 통상의 활동 범위 내에서 상표를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등은 따로 사용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당하게 상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품이라도 법인 측에 상표사용신청을 해야 한다. 먼저 ‘상표사용신청서’와 ‘서약서’를 작성하고, 상표를 부착하고자 하는 상품의 견본을 법인에 제출해야 한다. 상품의 안정적인 생산 시설이나, 제조물배상책임보험 등의 추가적인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법인이 상표사용을 허락한다면 60일 이내에 상품사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체결 완료 후에 법인은 신청자에게 상표사용승인서를 발급한다. 이후 계약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법인에 당해 상표를 부착한 상품의 견본을 제공해야 한다. 서비스일 경우 사용 상태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제반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최초의 계약 기간은 1년이며, 다만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 계약 기간을 늘릴 수 있다.

 

글 | 권병유 기자 uniform@

일러스트 | 정예현 전문기자

그래픽 | 이선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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