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취재를 앞두고 평소보다 1시간30분이나 일찍 출근하는 길이었다. 옷차림과 화장도 더 신경 쓰고, 오늘 할 일을 시뮬레이션으로 수 차례 돌리고 있었다. ‘잘 해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손엔 땀이 나고 머리는 핑 돌았다. 머리를 식히겠다고 핸드폰을 보다가 한 짤을 발견하고 웃음이 터졌다. “대충 살자... 대게(usually) 처럼...”

  아마도 해물집 간판 사진인 것 같은데, 대게의 영어 번역이 usually(대개)로 된 것이었다. 이미 한참 유명해진 ‘대충살자 시리즈’였다. (독자 대부분이 이미 봤을 것 같지만 검색하면 여러 시리즈를 볼 수 있다.) 그래, 이 일이 중요하면 얼마나 중요하다고 현기증까지 느껴가며 긴장했을까.

  돌아보면 내 삶은 ‘아등바등’한 순간으로 가득했다. 고입-대입-취업 시절 ‘늘 열심히!’를 외치며 유노윤호 같은 열정을 가지고 살았다. “해보긴 했냐”고 물었다는 정주영 회장의 명언처럼 일단 열심히 해봤다. 힘든 과정도 달콤한 결과가 나오면 잊을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2년 쯤 전이다. 기자 초년생 시절 잠을 쪼개가며 한 사건에 매달렸다. 하루종일, 쉬는 날까지도 사건 생각만 했다. 사건이 일단락 되고 돌아보니 몸에선 각종 위험신호가 왔고 내 예민함을 받아주던 가족들은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의욕도 아이디어도 없어 멍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이 늘어갔다. ‘번아웃’된 거다.

  ‘열심’과 ‘열정’으로 촘촘히 채운 시간 끝에 잃은 것도 많다는 걸 깨달았을 때,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요즘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같은 책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전력질주를 한 뒤에 힘을 좀 빼도 괜찮다는 걸 깨닫는 셈이다.

  일부 사람들은 “먹고 살만 해지니까 할 수 있는 소리”라고도 한다. ‘소확행’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고, 작은 것에 행복해질 수 있기까지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동생, 비정규직으로 회사를 옮겨다니는 친구만 봐도 내 생각에 조심스러워진다.

  그치만 하나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사는 동안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건강과 가족,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같은 것 말이다. “길이 없으면 찾고, 찾아도 없으면 닦으라”는 말은 ‘길을 찾고 닦느라 주변의 소중한 것은 지나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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