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를 하시는 목적이 뭐예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여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획기적인 답을 내놓았다.

“죽을라구요.”

그녀는 스위스로 여행을 가서 죽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죽고 싶어 하는 것인지는 차치하고서, 왜 영어냐는 질문에는 국제공용어 노릇을 하는 영어로 서류작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하고 싶다고 했다.

“독어나 불어를 단기간에 배우기는 어려우니까.”

그녀는 한쪽 입꼬리만 올리는 시니컬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미소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아니, 죽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나는 그녀와 애인 비슷한 관계가 되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때는 대학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새벽에서 오전 사이 시간에는 학원에서 직장인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쳤다. 오후 시간은 수업, 학회에 출석하거나 연구실에서 교수님과 동료의 보조를 맞추었다. 틈틈이 졸업시험과 학위논문을 준비했지만, 사실 논문은 반쯤 포기하고 있던 때였다. 특수대학원이었기에 졸업하지 않고 학위 과정 수료로 학업을 마치는 것이 흔했고, 나도 괜찮다는 식의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녀에게서 과외 요청이 들어왔다. 월 80만 원으로 학원과 내가 1:3, 즉 원장님이 20만 원 내가 60만 원을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고,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원장님이 20만 원이나 떼어가는 것이 마뜩잖았지만,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대학원생에게는 큰 금액이었다. 내가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원장님이 제멋대로 과외 스케줄을 기정사실로 했다.

 

상담 때 만난 그녀는 피곤함에 절어있었고 말투가 쌀쌀맞았다. 공부 목적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죽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예? 뭐라고요?”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부연했다.

“스위스에 여행을 가서 안락사할 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스위스’와 ‘안락사’가 무엇인지, 그 연관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도통 모르겠는 내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 그녀는 강사인 내가 해야 했을 말들을 술술 내뱉으며 상담을 대신 이끌었다.

“주 3회이니까 이틀은 강독으로, 나머지 하루는 회화로 가죠. 교재는 기존 수업에 쓰는 거로, 단어나 숙어는 내가 가진 책으로 해요.”

그녀가 스마트폰 스케줄러를 보여주며 날짜를 잡는 와중에도 나는 ‘스위스’와 ‘안락사’라는 단어에 홀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정신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강의실을 떠나고 없었다. 그때쯤에는 두 개의 단어 각각에 대해서는 이해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인식하지는 못했다. 스위스는 유럽국가 중 하나일 테고, 안락사는 아픈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것일 터였다. ‘안락사를 할 것이다.’는 말은 또 무엇일까? 그 단어에는 ‘당했다.’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원장님은 싱글벙글했다. 그녀가 육 개월 치의 학원비를 한꺼번에 결제하고 갔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아직 때가 이르지만 아무 때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도 된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교재는 그냥 서비스로 줬어.”

대충 답을 하고 가방을 챙겨 학원을 나섰다. 세상을 이미 다 겪어봤다는 듯한 무료한 표정과 냉담한 태도, 반년 치의 학원비를 단번에 결제할 수 있는 재력. 혹시 그녀가 어디 재벌가의 자제는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학원에 올 리가 없었다.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던 중에 길 건너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해가 기울며 어두컴컴해지는 가운데 그녀가 입은 형광 윈드브레이커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단 횡단을 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곁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말을 건네는 순간, 그녀의 스마트폰에서 ‘띠링!’ 하고 소리가 났다. 그녀는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뭔지 모를 복잡한 화면을 터치한 후에야 나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누군지 알았다는 듯 눈썹을 한번 들썩하며 말했다.

“조금 전에 봤는데 무슨 인사예요?”

차가운 말씨였다.

“그냥,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그녀는 왼손을 한 번 휘저으며 말했다.

“됐고, 수업 때나 봐요. 바빠서 이만 갑니다.”

대답할 틈도 없었다. 그녀는 급한 듯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근처 먹자골목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운동화도 형광이었다.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집으로 가는 중에 스마트폰을 꺼내 ‘스위스’를 검색했다.

 

면적: 41,277㎢

수도: 베른

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인구: 약 팔백오십만 명

종교: 가톨릭이 41.8%, 개신교가 35.3%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접경하고 있는 나라였다. 국기는 적십자 마크를 색 반전시킨 모습이었고 초콜릿과 알프스, 스위스 은행이 유명했다. ‘스위스 안락사’를 검색하니 원하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스위스는 유일하게 외국인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였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득세하고 있는 곳에서 그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녀는 상담 때 했던 말 그대로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성립되니까.

스위스 안락사와 관련된 최근 기사를 하나 읽었다. 백 살이 훌쩍 넘은 미국인 물리학자가 자살을 위해 스위스로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취재진이 그 결심의 이유를 묻자, 그는 단지 “나를 존중해 달라.”라고만 말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삶의 희로애락과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노인이었다. 그만 영면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을 삶을 마저 살아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대로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찝찝함이 남는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문제였다. 결국은 뭐 그런 사람도 있는 거겠지, 하고 말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저 먼 나라의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나이도 많은 할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고, 사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책상 앞에 앉았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새로 생긴 강의 일정을 스마트폰에 입력해놓았다. 모두 평일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동할 시간이 촉박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나쁠 것도 없었다. 문학사 책을 아무 데나 펼쳐 놓았다. 전후 문학에 대한 부분이었다. 시험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졸업이든 논문이든 아무래도 의욕이 나지 않을 때 이렇게 두꺼운 문학사 책의 아무런 부분을 읽는다. 마냥 쉬기는 죄책감이 들고, 공부는 싫은 그런 생각에서 연유한 행동이다. 문제는 최근에 그런 시간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활자로 읽어내다 보면 ‘육이오동란’이 실제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다. 뭘 하는 짓인지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자금 대출의 이자는 불어나고 있다. 그녀처럼 스위스로 떠나서 죽어버릴까 싶었다. 하지만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로 부채 때문에 스위스 정부에서 내 안락사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째로 굳이 죽으러 스위스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첫 수업부터 그녀는 지각을 했다. 십 분쯤 늦게 강의실에 도착한 그녀는 자리에 앉아 사지를 축 늘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집게손가락으로 반소매 티셔츠를 잡고 펄럭대며 비지땀을 흘리는 그녀를 위해 에어컨을 켰다. 어느 정도 숨을 골랐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뭐해요. 수업 안 해요?”

사과도 인사도 아니었다. 교재도 아직 꺼내놓지 않은 주제에 말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화가 났지만, 그녀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 보여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첫 수업이기도 했다. 80만 원, 아니 60만 원을 떠올리고는 펼칠 교재를 알려주고 그것으로 말았다.

“주황색 책, 그거부터 꺼내세요.”

빙빙 돌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영어로 몰두했다. 수업 방식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바로 첫 꼭지에 들어갔다. 그날 수업은 여느 첫 수업과는 다르게 농담이나 자기소개를 비롯한 어떤 사적 대화도 휴식 시간도 없이 딱딱한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그녀의 불쾌한 태도에 대한 내 나름의 대응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그녀는 “갑니다.”라고 말하고는 쌩하고 사라졌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문틈으로 싱글벙글한 얼굴을 들이밀며 첫 수업에 관해 물어오는 원장님을 따라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뛰어나진 않지만 착실한 학생이었다. 수업 때마다 이루어지는 단어 시험에서, 50문항 중에 적어도 서른다섯 단어 이상은 꾸준히 적어냈다. 틀리거나 아예 쓰지 못한 단어는 다음 시험에서 꼭 만회했다. 영어 실력 자체는 전형적이었다. 수능이나 토익 유형의 문제 풀이만 가능한 독해력을 지녔고, 회화는 거의 불능이었다. 돌을 깨는 느낌으로 가르쳤다. 독해는 몇 가지의 어려운 단어나 숙어를 알려주고 실용적인 지문을 되는대로 직접 해석하게 한 후, 내가 다시 짚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회화는 문장이 되건 안 되건 계속 영어로 말을 주고받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 찬스는 단 한 번만 허용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여전히 사적인 대화와 휴식시간은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그녀는 칼같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간다는 짧은 인사말도 생략되었다.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잡다한 관습적 행위가 그녀와 나 사이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못해 헤쳐나가고 있는 대학 생활과 학내 정치판을 상기하면, 차라리 이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락사를 위한 스위스 여행에 관해 묻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무미건조하게 두 번째 달이 또 지나는 것인가 싶었을 때였다. 회화 시간에 그녀가 휴식시간을 요청했다. ‘여행을 가보고 싶은 나라’를 주제로 기껏해야 오 분쯤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녀가 입을 닫았다.

“Why do you wanna go to Switzerland?”

왜 스위스에 가고 싶은 것인지를 묻자, 그녀는 입을 다물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한국말로 답했다. 한국어 찬스는 아니었다.

“여기 담배 피울 데 있나?”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비상계단의 층계참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내가 먼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나도 피울게요.”

“그러든지.”

그녀는 예의 차가운 말투로 대답하며 담뱃갑을 열었다. 그녀가 은근슬쩍 말을 놓은 것이 거슬렸다.

“근데 왜 반말이에요?”

담배가 다 떨어졌는지, 그녀는 담뱃갑을 구겨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말했다.

“대학원생이라며?”

내가 대학원생인 것과 그녀가 나에게 반말을 하는 것의 연관 관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대학원생의 나이보다 그녀가 몇 살 더 먹었다손 치더라도 합의도 없이 반말이라니 꼰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요?”

“서른도 안 됐을 거 아니야, 그보다 담배 하나만 줘.”

따지는 듯한 내 말에 그녀는 뻔뻔하게 담배를 요구할 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시하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60만 원을 되뇌었다.

“그래서, 당신은 몇 살인데요? 알려주면 줄게요.”

“서른, 됐지?”

그녀는 즉각 대답하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주며 눈을 흘겼다. 기껏해야 두 살 차이였다. 그녀는 담배를 심호흡하듯 깊게 빨아 내쉬고는 말했다.

“담배는 끊으래야 끊을 수가 없단 말이지.”

코웃음이 나왔다.

“곧 죽겠다는 사람이 담배는 끊어서 뭘 하려는지.”

생각만 한다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녀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곧 맞장구를 쳤다.

“그러네, 어차피 죽을 건데 두세 갑씩 피워댄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시원하게 자른 단발머리에 진한 다크서클, 왼쪽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시니컬한 웃음이 썩 어울렸다. 그녀가 담배를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우리는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이때가 기회인가 싶었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져다.

“근데 스위스 정부는 무슨 자격으로 지들 맘대로 사람을 죽여줘요?”

그녀는 귀찮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정부는 허용했을 뿐이야.”

그녀는 ‘타스’라는 단체명을 알려주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그녀가 짧게 답을 툭툭 던져주었지만, 궁금증을 충분히 풀어주지는 못했다. 두 번째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쯤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꽁초를 튕겨내며 물었다.

“왜요?”

“내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알고 싶지?”

그랬다. 스위스고 안락사고 이제 대충은 알겠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죽고자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핵심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가타부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예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변죽만 울리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었다.

“궁금하면 나랑 데이트할래?”

 

일요일 늦은 저녁, 학원 근처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2층 창가 쪽에 붙어있는 길쭉한 테이블의 구석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앉으며 살펴보니 수업 교재와 단어장이었다. 인사말을 건네려는 차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눈은 여전히 책에 가 있었다.

“오, 비, 엘, 아이, 쥐, 에이, 티아이오엔. 뜻이 뭐야?”

“오블리게이션, 뜻은 의무예요. 법적인 혹은 도의적인 책임을 말하는 거죠.”

단어가 들어간 예문까지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검지를 들어 나의 입을 막았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그녀는 그렇게 내리 한 시간 반 동안 책을 봤다. 그사이에 나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이따금 들려오는 질문에 꾸벅꾸벅 졸면서 반응했다. 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고, 화장실도 서너 차례 다녀왔다. 몇 번 말을 걸어 보았으나, 그녀는 뚝심 있게 공부에 몰두했다. 딱 한 번 반응을 해주긴 했다.

“닥치고 기다려.”

그 후로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닥치고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닥치는 것은 안 됐다. 묻는 것에는 정확하게 답해야 했다. 질문이 뜸한 사이에 나는 아예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이상한 소리를 낼 때였다. 그녀가 잠이 덜 깬 나의 등을 두들겼다.

“일어나! 잠은 가서 자.”

흘린 침을 닦으며 물었다.

“어딜 가는데요. 데이트는 벌써 끝난 거예요? 집에 가라고요?”

그녀가 짐을 챙겨 먼저 일어섰다.

“따라와.”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 무인 모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람에 나풀대는 무지개색의 주차장 가림막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모텔이라니, 이제야 제대로 된 데이트답기는 했다. 하지만 앞선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는 것이 찝찝했다. 잘 팔리는 최신 영화를 한 편 보고 난 다음에 식사를 한다던가, 술을 한잔 걸친다든가 하는 것 없이 곧장 모텔은 처음이었다. 내가 쭈뼛쭈뼛 주저하자 그녀가 팔짱을 끼며 내 몸을 끌어당겼다. 괜스레 담배 하나를 빼 물고는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겠어요?”

“어차피 죽을 몸인데 뭐 어때. 싫어?”

죽을 몸이라니. 솔직히 어느 정도 끓어오르던 찰나였는데, 짜게 식어버렸다. 담배를 다 태운 후에 그녀에게 반쯤 떼밀려 모텔로 들어갔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졌다. 두 번을 잇따른 후에는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었다. 순서가 바뀐 때늦은 탐색전이었다.

“직업이 뭐예요.”

물어 놓고도 꼰대식 호구조사 같았다.

“이것저것.”

“그러지 말고 말해 봐요.”

“바리스타, 노가다, 대리운전 같은 거…….”

알수록 의외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낮에 바리스타로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여성 고객을 상대로 대리운전을 한다고 했다. 카드값이 급해지면 휴일이나 주말에 공사판도 나간다고 했다. 그녀가 재벌 3세일까, 졸부일까 했던 나의 상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니까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각부터 그녀의 밤일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서둘러 학원을 빠져나가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뷰티풀 레이디인지 뭔지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업로드 되는 콜을 따낸다고 했다. 고객과 통화를 하고, 늦어도 십 분 안쪽으로는 도착해야 욕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전 남자친구만 계속 찾으며 퍼져버린 만취 고객의 뺨을 올려친 이야기라든가, 대리운전기사들을 위해 야간에 운영되는 사설 셔틀버스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재미가 있었다. 그녀는 이 셔틀에서, 저 셔틀로 갈아타는 것을 ‘점프’라고 표현했다. 일요일 밤에는 생각보다 고객이 많지 않고 셔틀도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일을 쉰다고 했다. 버스도 셔틀도 없는 새벽에 향남 같은 시골이나 동탄, 수지 같은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버리면 고스란히 적자라고 했다.

“이제 쉬는 날도 없어.”

왜냐고 묻자 그녀는 또 뜬금없는 답을 했다.

“일요일엔 너랑 자야지.”

“뭡니까, 그게?”

“거짓말이야. 잘 속네?”

담배를 피워 물었다.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싸구려 모텔 무드 등 아래 연기가 그득해졌다. 졸음이 밀려왔다. 잠이 들어버리기 전에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왜 죽으려고 하는 건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녀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그냥.”이라고 답했다.

“에이, 뭐예요? 알려준다면서요.”

그녀는 피곤하다며 등을 돌렸다. 잠들려는 그녀를 계속 귀찮게 하며 집요하게 묻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대리를 하다 보면 대게가 만취한 사람이야. 한번은 어떤 아줌마를 부축해서 차에서 내리는데 욱욱, 하더니 나한테 토를 하더라.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머저리들은 다 죽어야 해.”

토사물을 뒤집어쓴 그녀는 겉옷을 벗어 아줌마의 면상에 집어 던지고 자리를 떴다고 했다. 그러고는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단숨에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였다. 요지는 이른 새벽에 낯선 동네의 전봇대 아래에서 눈을 떴는데, 그때 죽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청소차가 지나가는데 고약한 냄새가 너무 싫었다는 말을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녀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같이 잤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말없이 출석해서 말없이 사라졌다. 수업은 여전히 딱딱하게 진행됐다. 달라진 것은 휴식시간이 생긴 것이었다. 이 새로 생긴 10분 정도의 휴식시간 때만 모텔에서와 같은 거리가 허용되었다. 그마저도 그녀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끝이었다. 우리는 각자 담배 두 개비씩을 태우며 그녀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타스라는 곳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거래요?”

“돈벌이가 짭짤한 거겠지. 천만 원은 더 들어.”

“그래서 죽어라 일하는 거예요?”

그녀의 관심이 타스의 구체적인 내력에 대한 것까지는 미치지는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곳이 비영리단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거 안락사가 아니라 조력자살이라던데요? 무슨 병 같은 게 있어야만 가능한 거 아녜요?”

이것에 대해서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안락사나 조력자살이나 그게 그것이었다. 조력자살이나 자기 결정권과 같은 생소한 용어를 섣불리 꺼내면 설명이 피곤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나마 익숙한 안락사라는 단어를 쓴다고 했다. 그리고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이백여 가지의 경우가 적힌 리스트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모텔에서 했던 그녀의 농담은 거짓이 아니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은 그녀와의 정기적인 데이트 시간이 되었다. 나는 영미 문학사 책을 데이트에 들고 갔다. 습관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놓고 읽다가 음료를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졸면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무인 모텔로 갔다. 섹스를 했고, 담배를 피우며 실없는 농담을 나누다가 잠들었다.

어느 날에는 그녀가 조력자살 허가 리스트와 타스의 회원 신청서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발가벗고 침대에 누워서 게임을 했다. 이백여 가지의 경우 중, 몇 번에 그녀가 해당하는지 맞히면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려준다고 했다. 열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맞히지 못했다. 신청서 첨삭도 발가벗은 채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건강 상태와 가족 사항, 신청 동기 등이 영어로 적혀있었다. 일종의 취업용 자기소개서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에 애가 있어요?”

신청서에는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 미혼모가 되어 낳은 아이가 미국 어딘가로 입양되어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당연히 구라지. 죽으려면 뭔가 건덕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럴듯하기는 했다. 자살로 끝나는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적당히 불우한 과거가 부여되어 있어야 마땅했다. 그 타스라는 단체가 ‘TV는 사랑을 싣고’의 제작진도 아니고, 그 드넓은 미 대륙에서 입양아를 찾아내어 사실관계를 확인할 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쉽게 떠올릴만한 유의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수면 장애와 우울증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약도 먹지 않고 맑은 정신 상태이다. 이것도 구라예요?”

졸피뎀과 렉사프로 등을 장기간 복용한 이력이 있었다. 계속 가래가 끓는지 물을 찾던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건 진짜.”

이것은 믿을만했다. 요즘 사람치고 어디 안 아픈 사람은 없을 테니까. 오탈자와 몇 가지의 표현, 문법 오류를 빨간 펜으로 표시해나갔다.

“내가 진짜 그럴듯하게 다시 써줄까요?”

그래도 한때 문학가를 꿈꿨던 문학도로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서 열의가 불타올랐지만, 그녀는 첨삭만 부탁한다고 했다. 스위스로 가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으니 당연했다. 우리는 주인공이 죽고자 하는 이유에 더욱 그럴듯한 당위를 부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다가 잠이 들었다.

반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그렇게 훌훌 지나갔다. 그녀의 영어 실력은 꾸준히 상승했고, 신청서는 기타 서류와 함께 스위스로 날아갔다. 그녀가 서류 준비를 위해 관공서에 가거나,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던 날 빼고는 수업도 데이트도 꾸준하게 이어졌다. 그사이에 나는 졸업시험에 떨어졌고, 논문은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뒤늦게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시간과 돈을 고려하자면 졸업, 아니 수료가 더는 늦어지면 안 됐다. 그녀가 크게 일조한 적금의 만기가 코앞이긴 했지만, 그 돈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된 취업이며, 한참 남은 학자금 대출, 결혼이며, 내 집 마련까지 앞으로 나갈 돈은 무궁무진했다. 미래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녀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과외 수업은 끝나버렸고 그녀의 스위스 여행 날짜가 정해졌다. 그녀의 미래는 죽음으로 확정 지어졌다. 누구나 죽는 것을 피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더 빨랐다. 아니, 빠르다는 말도 어색했다. 가령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진 않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주의 토요일 오전이었다. 그녀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을 보던 중이었다. 늘 만나던 커피숍에서 볼 수 있냐는 메시지였다. ‘당장’이라는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내가 보낸 수많은 메시지를 일관되게 무시해왔던 그녀였다. 과감하게 공부를 접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녀는 상아색의 앞치마에 빵모자를 쓰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두 번 돌려 묶은 앞치마 끈이 그녀의 고집 있고 단단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익숙하고 간결한 동작으로 원두를 갈아 담고 커피 메이커를 가동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완성되자, 그것을 들고 내게로 왔다.

“창문 너머로 오는 거 봤어.”

목소리에 유난한 피로가 담겨있었다. 그녀가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괜한 흰소리를 했다.

“일하는 모습은 처음인데, 멋있는데요? 강의할 때 나도 그런가?”

그녀는 웃지 않았다. 때 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몇 차례 더 농담을 던졌으나 그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는 사이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백만 원만 빌려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남의 일인 듯, 거절해도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나에게 십 분이라는 말미를 주고는, 손이 재지 못해 허둥대는 동료 직원 곁으로 돌아갔다. 뜬금없는 부탁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통장 몇 개의 잔액을 확인했다. 얼추 그녀가 원하는 금액은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십 분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녀가 돌아와 앉았다. 뭐라도 씹은 듯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쪼그라들었어? 간단해, Do or die?”

나도 그녀를 따라 웃어버렸다. 갚지 못할 돈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 돈이 이체되었고, 그녀는 나에게 비행기 티켓을 맡겼다. 담보라고 했다.

“이제 가, 바빠.”

그녀에게 나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 똑같다 싶었다. 우리의 관계라는 게 원래가 그런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 각자의 있을 곳으로 돌아갔다. 출입구를 나설 때, 얼핏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보자는 식의 말인 것 같았다.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그녀가 실은 쿨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살펴본 티켓은 모스크바를 경유해 취리히로 가는 월요일 아침 항공편이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날, 그러니까 마지막 데이트가 있을 예정이었던 일요일. 오전 시간 내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찍 떠진 눈을 억지로 다시 감아보려 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어설프게 아침을 먹은 후, 공부를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문학사 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마저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를 스위스로 떠나보낼 자신도 없었고, 그녀를 만나서 웃고, 담배를 피우고, 농담할 자신도 없었다. 이제 와서 겁이 나다니 한심했다. 그녀를 말렸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녀는 “절대 말리지 마.”라고 이야기했었다. 그게 몇 번째 데이트 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말에 내 멋대로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걸 깡그리 벗어 던지고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신청서의 첨삭을 봐주었고, 환전과 해외 송금을 도와주고, 값싼 항공사를 추천해주었다. 죽으러 가는 길을 잘 닦아준 셈이었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과거는 그럴듯하게 잘 꾸며졌다. 그 신청서 속 주인공은 진짜 그녀가 맞는 것일까? 그녀가 자신의 스위스행을 막지 말라고 했던 그날,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죽고자 하는 이유를 물었고, 그녀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내가 아무런 의미 없이 문학사를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마지막 단서였다. 저녁 데이트에 나가지 않았다. 그저 그녀보다 먼저 카페에 도착해 티켓을 동료 직원에게 맡겨버렸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사서 자리를 떴다.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영영 모르게 되었다. 티켓을 찢어버렸어야 했을까? 그까짓 것은 다시 사면 그만이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녀에게 빌려준 백만 원이었다. 그것이 스위스 안락사 여행과 관련 없는 것이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더 멋대로 상상하게 됐다. 그 돈이 추가로 스위스에 넘어갔고, 그녀에게 주사될 약과 곁을 지켜줄 의사를 고용하는 데 사용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가 실제로 모스크바를 경유해 스위스 취리히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미국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타스가 미국에서 그녀의 아이를 찾아내서 연결해주었을는지 모른다. 급하게 미국행 비행기 표를 구매하기 위해 돈을 빌린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산수를 잘해서 미국 대통령상도 받은 적 있는 한 아이와 그녀가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극적인 모녀 상봉을 할 수도 있었다. 아이가 그녀와 같은 시니컬한 미소를 지을 줄 안다면 더욱 감동적일 것만 같았다.

그녀가 떠난 지 한 달쯤이 되었을 무렵에 우리가 데이트했던, 그녀의 일터였던 그 커피숍에 들렀다. 의식적으로 그곳을 피하던 차였지만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학원 사람들과 식사를 한 뒤에 어물쩍 그곳에 들어가게 됐다. 손이 느렸던 그녀의 동료 직원이 나를 알아보았다. 그는 내가 통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며 국제우편 하나를 전해주었다. 그녀에게서 온 것이었다.

정부의 부당한 사교육 탄압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힐난하는 원장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테이블 아래로 편지 봉투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겉면에 스위스 소재의 한 호텔 마크가 인쇄되어 있었다. 일단 그녀가 그곳으로 떠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는 척하며 자리를 떴다. 근처 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아무 버스를 잡아탔다. 승객은 많지 않았지만,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냉방이 아예 되지 않아 후텁지근했다. 게다가 포장 음식을 들고 탄 사람이 있는지 기름내가 가득했다. 속이 메슥거렸다.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창문을 열었다. 버스가 교차로에서 우회전해서 근처 초등학교 쪽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관자놀이에서 땀방울이 굴러떨어졌다. 반면에 때 없이 오한이 들었다. 요 며칠 사이 감기 기운이 돌기는 했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어보았다. 반투명한 그림이 인쇄된 편지가 들어있었다. 뿌연 납빛의 안개 속에 서양식 고성(古城)이 묵직하게 서 있었고, 첨탑의 꼭대기에는 붉은 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 위로 익숙한 필체의 영어로 된 짧은 글이 적혀있었다.

Hey, it's me. I'm finally in Switzerland.

I have just checked in a hotel. The work will be tomorrow afternoon.

I hope you do well without me.

 

어이, 나야. 드디어 스위스에 왔다.

이제 막 호텔에 들어왔어. 그건 내일 오후에 진행하기로 했어.

나 없이도 잘 지내길 바라.

 

그녀는 자기 죽음을, 그걸 그저 ‘the work’라고 표현했다. 뭐라도 있길 바란 내가 바보였다. 편지의 끝에는 한국어로 “내일 죽을 목숨인데, 여기 더럽게 예쁘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녀다운 추신이었다. 내심 그녀의 죽음에 관한 무언가의 결정적인 언질을 기대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편지를 전달받은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불안이 지닌 본질적 속성은, 사실 그런 더러운 기대감이었다. 스위스에 도착한 그때,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여간 그 와중에 그녀는 나를 떠올려주었다. 백만 원이 떠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담배가 태우고 싶었다. 망할 놈의 기름내 때문에 속이 울렁대며 입속이 시었다. 버스가 과속 방지 턱을 연속해서 지나쳤다. 곧 위경련이라도 올 것 같았다.

그녀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이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편지를 적어내며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마지막 추신을 적을 때는 웃지 않았을까? 눈물을 흘리는 모습 같은 것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 미국에서 피붙이를 만나 어색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억지로 그려냈다. 카페, 무인 모텔을 드나들던 우리의 데이트가, 영어 수업이 이루어졌던 강의실의 광경이 잇따랐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약물을 스스로 주입하며 생을 마감하는 피곤함에 절어있는 그녀의 모습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시커멓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푸석푸석한 단발머리와 살짝 올린 왼쪽 입꼬리 말이다.

버스가 들썩이며 급하게 멈추었다. 앞문을 연 기사가 씩씩거리며 버스에서 내리더니, 삿대질하며 윽박질렀다. 두통과 함께 구토가 쏠렸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는 모조리 게워내기 시작했다.

글ㅣ김상현

일러스트ㅣ주재민 전문기자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