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퍼풀과 관련된 굿즈(Goods)가 가게 한쪽에 진열돼있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홍익대 부근 연남동 골목, 이 골목 초입엔 ‘봉황당’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펍이 있다. 봉황당은 해외 축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 FC(리버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유일 리버풀 팬 펍이다. 이곳은 다른 펍과 달리 주말 새벽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펼쳐지는 리버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콥(THE KOP, 리버풀 FC의 서포터즈를 통칭해 부르는 단어)’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새벽, ‘콥’들로 가득 찼던 봉황당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들어가 봤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뼛속까지 리버풀

  “여긴가 봐, 얼른 들어가자!” 붉은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있던 두 사람이 리버풀의 엠블럼 일부가 그려져 있는 봉황당의 간판을 발견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봉황당은 간판과 계단에서부터 리버풀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간판에는 팀의 대표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패러디한 ‘You'll Never Drink Alone’이 적혀 있고, 지하 펍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벽과 문에는 붉은 리버풀 관련 장식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친구와 함께 봉황당을 찾은 조영창(남‧26) 씨는 들뜬 모습이었다. “인터넷에서 축구 펍을 검색하다가 찾아왔어요. 평소에도 EPL을 즐겨보긴 하는데 이렇게 모여서 보는 건 처음이라 기대돼요.”

  펍 안에 들어서면 레전드 선수들의 친필 싸인 유니폼과 피규어, 리버풀 FC 선수들이 1면을 장식한 축구잡지들이 가게 곳곳에 비치돼 팬들의 시선을 끈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두 김성민(남‧35) 대표의 손을 거쳤다. “입구 문에 보면 리버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d)가 자신의 딸을 안으며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로 들어서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 있는데 제가 그렸습니다. 벽에 장식된 머플러나 티셔츠들도 모두 제가 영국에서 공수해 온 것들이에요.”

▲ 리버풀 팬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작된 봉황당의 입구다.

  경기가 시작하려면 아직 꽤 남은 시간, 테이블은 이미 다 찼고 몇몇은 일어서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발 디딜 틈 없이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자 김성민 대표가 앞으로 나와서 상품이 걸린 퀴즈 이벤트를 진행했다. 상품은 모두 축구 관련 굿즈였다. 유니폼, 책 등 축구팬들이라면 누구나 구미가 당기는 경품에 장내가 긴장감으로 고요해졌다.

  “고별전을 앞뒀던 스티븐 제라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몇 초 만에 퇴장당했을까요?” “40초!, 46초!, 45초!…38초!” “38초 정답입니다!” 문제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답자가 나왔다. 퀴즈로 본격적인 경기 시작 전부터 펍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뒤이어 바로 중계 화면이 켜지자 매장 내 불이 꺼지며 시끌벅적한 응원이 시작됐다.

 

  열띤 응원전, 함께 응원해서 더 신나요!

  이날 열린 경기에서 리버풀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5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 아스널 FC(아스널)과 붙었다. 경기 내내 양 팀은 모두 공격적인 스타일로 맞부딪혀 응원을 달궜다. 호각을 다투는 경기인 만큼 아까운 장면들이 여러 번 나왔다. “아! 너무 아깝다.. 조금만 더 옆으로 갔으면 골인데...” 리버풀의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Virgil van Dijk)의 헤더 슛이 아스널의 골키퍼 베른트 레노(Bernd Leno)에게 막히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 팬들이 삼삼오오 스크린 앞에 모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한참 서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와중에 전반 61분 리버풀 선수 제임스 밀너(James Milner)의 중거리슛이 드디어 골로 연결되자 봉황당 안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김성민 대표가 ‘제임스’를 선창하자 사람들은 ‘밀너’를 후창했다. “제임스! 밀너! 제임스! 밀너!” 비록 경기가 벌어지는 영국과는 한참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의 응원이었지만 분위기만큼은 현지 경기장이었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Emirates Stadium)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고조됐다. 리버풀 열성 팬 김희수(남‧28) 씨는 처음 경험하는 펍 응원에 신이 났다. “와 진짜 영국에서 보는 것 같아요. 경기도 재밌는데 다 같이 응원하는 거 너무 즐거워요!”

  봉황당은 리버풀 팬 펍이지만 상대 팀 팬들도 많이 찾아온다. 이날도 아스널 팬들이 이곳을 찾아 응원에 열기를 더했다. 아스널의 동점골이 터지자 아스널 팬 중 한 명이 주도해 선제골 때 응원을 똑같이 받아쳤다. 골을 넣은 선수인 알렉산드로 라카제트(Alexandre Lacazette)의 이름을 연호하며 동점 상황을 만끽했다.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봉황당을 찾은 김도정(여‧25) 씨는 아스널 팬 펍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아스널 팬 펍은 나중에 제가 직접 만들 거예요. 축구 펍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게 졌다는 말과 비긴 것도 잘한 거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은채(이화여대 경영14) 씨는 경기는 아쉬웠지만 응원만큼은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리버풀 팬이 많아도 상대 팀 팬들과 서로 존중해주면서 응원하는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경기가 끝난 새벽 4시, 사람들이 하나둘 펍에서 나왔다. 결과가 아쉬운지 경기 내용에 대해 토론을 이어나가는 일행도 보였다. 다음 경기엔 이길 거라는 기대와 또 같이 와서 보자는 약속을 하며 뜨거웠던 새벽은 깊어갔다.

 

글‧사진 | 박성수 기자 yan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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