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알바를 마친 늦은 밤, 고단한 몸으로 자취방을 향하다보면 내 입맛에 딱 맞는 술 한 잔이 간절해진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날엔 매콤한 떡볶이, 쌀쌀한 한기가 파고드는 겨울밤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붕어빵과 술 한 모금을 곁들일 수 있는 잔술집이 있다. 안주 없이 오로지 술만 파는, 옆옆살이길의 ‘바 라라 라디오’다.

  분홍 네온사인으로 제 존재를 강렬히 드러내는 한옥 내부엔 손님의 말소리가 잔잔히 흐른다. 목수로 일하고 있는 사장 라언니(가명, 남‧36)는 한옥을 직접 개조해 ‘바 라라 라디오’를 만들었다. 테이블은 한옥 방문으로 만들었고, 노랑 불빛을 사용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쪽 벽면에는 판매하고 있는 30여 개의 지역 특산주가 진열돼 있다. 이중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오미자와 산수유가 섞인 골드핑크색의 ‘황진이’와 제주도 감귤 껍데기를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니모메’다. 쌀과 누룩으로 만든 탁주 ‘감사랑’은 올해 어버이날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문경바람’을 따르던 라언니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맛있는 한국술이 많은데 접근성이 떨어져서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워요. 손님들이 다양한 한국술을 접하게 하고 싶어요.”

  라언니는 세 장에 걸쳐 빼곡히 적힌 전통주 종류를 올해 안에 1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손님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찾아 천천히 오래 동안 술을 즐기길 바라서다. ‘바 라라 라디오’를 찾을 때마다 새로운 술에 도전한다는 신혜원(문과대 언어15) 씨는 각종 술에 관한 설명을 꼼꼼히 읽었다. “향 있는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여기는 워낙 다양한 술이 있으니 실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 씨가 주문을 위해 손을 들자, 바에서 영화를 보며 술을 마시던 ‘바 라라 라디오’의 단골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 제조를 시작했다. ‘바 라라 라디오’를 거의 매일 찾는 단골들은 제조법까지 배워 서빙을 도맡아 한다. 라언니는 안주를 팔지 않는 점이 단골 유치의 비법이라 말한다. “안주를 팔지 않으니 손님들이 배달음식을 시키곤 해요. 양이 많으면 옆 손님과 나눠먹고, 서로 술 한 잔 대접하며 새로운 만남을 갖게되죠. 여기엔 대화할 사람이 있으니 더 자주 오는 것 같아요.”

 

글|송채현 기자 bravo@

사진|김예진 기자 si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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