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자 1862호는 고대신문 창간 71주년 기념 특집호였다. 1면에 총장 기념사가 실렸다. 과거에도 숱하게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의 창간기념호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5년 창간기념호는 1면에 ‘위축되는 공론장, 지성의 목소리는 어디에’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총장 기념사는 2면에 들어갔다. 2016년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을 담은 사진 기사가 1면 톱이었다. 총장 기념사는 2면이었다. 2017년엔 총장 기념사가 1면에 실렸지만 ‘고대신문에 전하는 독자의 바람’이라는 학교 구성원들의 목소리도 함께 1면에 실렸다. 2018년 창간기념호 1면엔 총장 기념사만 있다. 시간에 따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가. 기념사는 기사가 아니다. 기념사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고대신문이 매년 신문으로서 뒷걸음질 쳤다고 생각한다.

  #1 1862호 4면과 5면에는 과거 고대신문에서 일했던 선배들 인터뷰가 한바닥씩 실렸다. 창간기념호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왜 이 사람들이 2018년 창간기념호의 인터뷰 대상으로 선택되었는지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또 5면 제목은 ‘다양한 사람의 다채로운 목소리 담아내길’이었다. 기사 제목과 내용 모두 고대신문 내부 구성원을 향하고 있다. 나는 독자로서 어리둥절하다. 고대신문 기사는 독자인 나를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2 창간기념호 특별기획 첫 번째는 ‘통일’에 대한 것이었다. ‘오랜만의 남북관계 훈풍이 감돌아서’라고 기획 준비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2개 면을 할애한 ‘동아리 특별기획’은 ‘창간 71주년을 맞아 본교 동아리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는데 창간 71주년과 동아리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기사는 동아리 4개를 심층 취재했는데 ‘취재 요청에 협조해준 동아리에 감사하다’고만 했을 뿐 이들 동아리가 왜 어떤 방식으로 선정됐는지 설명이 없다.

  #3 ‘400억 원 기부를 약속한 노부부’에 대한 기사는 많이 아쉬웠다. 400억 원 기부 소식은 앞서 여러 언론에서 크게 다뤘다. 수백억 자산가에 어울리지 않는 노부부의 소박한 삶도 화제가 됐다. 고대신문에는 다른 언론 기사에 없는 이야기들이 있어야 했다. 그분들이 기부한 곳이 고려대니까. 하지만 고대신문은 본교 설립 이후 개인 기부자 가운데 최고액 기부 소식을 6면 하단에 짧은 기사로 처리했다. 사진은 노부부의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다. 400억 원은 앞으로 수많은 고대인의 학교생활을 바꿀 수 있는 금액이다. 그분들의 기부는 고대신문이 이렇게 하찮고 성의 없게 대접할 일이 아니다.

  고대신문은 노부부 기사를 1억 원을 기부한 모 교수의 얘기와 함께 전하면서 같은 크기로 다뤘다. 기사 크기는 기사의 가치다. 1억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400억 원이 1억 원과 동급 취급을 받은 건 코미디 같은 일이다. 고대신문만 보면 400억 원인지 400만 원인지 착각할만하다. 1862호 신문의 1면부터 24면까지를 다시 훑어봤다. 내 눈에는 400억 원 기부보다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기삿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고대신문에 기사의 중요도와 지면 구성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기준과 시스템이 남아있는지 의심스럽다.

 

박상기(역교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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