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0년 전 까지 만해도 우리네 정서는 집 밖에서 죽는 것은 ‘객사’라 하여 피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그러나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 이후 환자가 집에서 임종을 맞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환자 아내의 요청으로 인공호흡기를 떼고 집에서 임종을 맞도록 했는데, 후에 남편형제들이 의료진과 보호자를 고소하고 법원이 살인방조죄로 의료진에게 형을 내린 일련의 과정이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이후 의료현장에서 보호자와 의료진의 갈등이 빈번해졌지만 해결 방법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2008년 기관지내시경 검사 중에 폐출혈과 심호흡 정지가 일어나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세브란스병원의 김 할머니 가족들은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의 소를 제기하였다. 소송결과 1심과 2심, 대법원 모두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허용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법원은 연명의료중단 등에 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민간에서도 김 할머니 판결 이후 연명의료 결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명의료에 대한 입법 환경은 2012년에 출범한 제3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논의’를 제안하면서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위원회는 6개월 동안의 논의를 통해 권고안을 만들고, 복지부는 이를 근간으로 2015년 법률(안)을 마련했다. 이후 국회의 논의 과정을 거쳐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에 제정되고, 이후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2월 4일 전면 시행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의 가장 큰 의미는 법을 통해 스스로 임종을 준비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공식통로가 열렸다는 것이다. 건강할 때 연명의료와 관련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 두거나 투병 시 주치의와 함께 임종을 대비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두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임종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누구나 다 이 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임종을 맞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 하고 의료진은 환자와 관련한 상황을 환자에게 직접 전해주기를 불편해 한다. 그렇기에 이 제도를 적극 알려주지 않으면 입법 목적인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보호’를 이루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며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이 법은 가족 2인 진술에 의한 환자의 의사추정과 가족전원의 동의 방식으로도 환자의 임종기 연명의료 결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법률 시행 후 지금까지의 연명의료결정을 한 환자 중 3분의1은 가족 전원에 의해서, 3분의1은 가족 2인 추정에 의해서, 3분의1은 본인의 뜻이 담긴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해서 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우리네 삶과 죽음이 상당부분 가족에 의해 정해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3분의1은 주치와 함께 자신의 임종에 관해 의논하고 고민해서 결정을 했다. 이는 환자는 자신의 삶의 끝자락이 죽음이라는 것을 받다 들이고, 의료인은 환자의 신체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돌봄의 대상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결혼은 선택이 되고, 나홀로 족은 늘어나고, 초고령 사회가 도래하면서 함께하는 가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의학의 발달은 멈춘 숨을 다시 쉬게 하고 심지어 숨을 쉬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만들었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거나 심장이 멈춘 것만으로 임종을 판단할 수 없다. 삶과 죽음 사이에 회색의 지대가 존재한다. 회색지대의 어느 지점이 삶의 마지막이며 죽음의 완성인지 의학적 기술로만 알기가 어렵다. 이제 더 이상 의료진에게 내 죽음의 완료시점을 선언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더불어 나의 삶은 어디까지이고 나의 죽음 어디서 시작하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삶과 죽음을 동시에 고민하는 계기가 되고, 그 결정 과정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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