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헤르만헤세

 

하느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 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간단한 수식에서부터 복잡한 인간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하물며 절대적인 진리에 닿는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따라서 그 의지를 다지지 못한 채 쉬운 길로만 가려 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 진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헤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절대자에게 모든 걸 맡긴채 수동적인 자세로 있질 못한 것이다. 그랬기에 스스로를 더 ‘절망케’ 하고 스스로 ‘슬픔을 맛보게’하며 더 몰아세우면서도 절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진리에 도달하려는 ‘불꽃과 고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진리를 향한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헤세는 그런 고집스러운 ‘자아’만은 지탱해주길 바랐다. 오직 그 순수한 의지를 가진 채 진리를 향한다면 차마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런 ‘불꽃과 고뇌’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러한 절대적 진리가 있는지의 여부는 상관없다. 그저 그런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그런 진리를 깨닫길 원했다면, 과연 우리가 그동안 가져온 모습이 얼마나 의지적이었던 것일지 한번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해준 시였다.

  진리는 늘 그 자리였고 나의 길은 그 진리를 가리키고 있었고, 혼자 걷는 그 길 위로 길게 늘어뜨려진 빛만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임재우(경영대 경영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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