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벌금, 징역 및 사형 등의 ‘형벌 내리는 특권’은 헌법을 통해 오직 국가에게만 주어졌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이 힘을 행사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무시로 위협하는 형벌권의 잔인한 창끝을 여전히 피하기 어려운 2018년 가을이다.

  남을 불편케 하는 행위를 막는 제재방식은 다양하다. 살면서 조우하는 불편의 대부분은 시장에서 법 없이 해결한다. 가령 상품 질이 열악하면 거래를 끊는 것으로 페널티를 준다. 법의 테두리로 들어가도 민사와 행정적 제재수단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들로써도 억지하기 힘든 이른바 犯意(범의)와 罪責性(죄책성)이 현저한 해악들이 있다. 오직 그들만을 ‘범죄’로 규정하고 국가질서 유지의 최후보루로서 형벌을 쓰는 게 원칙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이미 형벌만능주의로 접어들었다. 몇 가지 증거를 찾아보자. 첫째, (형법전에 적시된 ‘일반범죄’들이 아닌) 온갖 경제‧사회적 행정규제를 위반할 때 쓰는 페널티들 중 형벌비중이 44%에 이른다고 이미 10년 전에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경고했다. 둘째, 규제위반에 대한 형벌조항을 담은 법률이 700여개이고, 개별 벌칙조항들은 5000개가 넘는다. 이것도 5년 전에 집계된 게 이 정도다. 1개 벌칙조항 당 연관 규제위반조항이 평균 2개씩만 있더라도 소위 ‘행정범죄’ 종류는 1만 개가 넘는다. 셋째, 형벌조항을 지닌 법률의 비율이 1960~70년대 50%에서 2017년 65%까지 치솟았다고 최근 김두얼 교수는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여러 부끄러운 기록들이 쌓였다. 벌금 이상 형벌을 받은 국민이 2000년대 들어 단 10년 동안 1.5배나 증가해서, 성인 4명당 1명이 최소 전과 1범이 되었다. 한국의 이 전과자수 증가율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이렇게 되면 조기출옥 역시 늘어날 것이다. 과도한 조기출옥이 재범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검증된 명제이다.

  더욱이 매년 신규 전과자수의 7할 정도가 행정규제의 위반자들이다. 행정범죄 피의자들을 우선 기소해왔고, 법원도 그들에게 유죄판결을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반면 살인, 강도, 성폭력, 폭행, 특수절도 등 끔찍한 강력범죄 뉴스는 갈수록 창궐한다. 다양한 원인 진단이 시급하지만, 연간 100만여 건의 행정범죄를 뒤치다꺼리 하느라 정작 강력범죄의 예방과 엄벌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영업행태 특히 진입‧가격 관련 규제들은 대개 소수 기득권자들과 규제기관을 위해 존속한다.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과잉규제’ 현상에 더하여, 규제위반에 대한 ‘과잉범죄화’의 길로도 치달아왔다. 한국은 그렇게 ‘형벌공화국’ 늪에 빠진 것이다. 과잉범죄화 원인에 관한 국내외 학계의 추론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무지와 사익추구이다. 전자는 형벌도입을 바라보는 입법자의 교만과 안일함을 일컫는다. 후자는 형벌로 무장되어 득보는 자들의 매우 조직적인 유인을 의미한다. 특히 무소불위 규제권자들의 재량, 갑질, 부패를 주목하자.

  산에서 밤 따면 7년, 노래방에서 술 팔면 2년, 운전하다 중앙펜스 파손하면 2년, 양재대로에서 자전거 타면 1년까지 감옥에 가둘 수 있다. 과잉범죄화 강의를 시작할 때 곧잘 언급하던 예시들이다. 과잉범죄화의 폐해는 이들이 순간 풍기는 희화성보다 훨씬 섬뜩하다. 국가질서유지 기능의 쇠퇴는 치명적이다. 형벌공화국에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기 힘들다. 금력과 권력이 부족하면 늘 불안에 휩싸이고, 전과는 힘이 없어 생긴 한낱 별의 숫자 정도로 간주된다. 결국 法治(법치)의 인프라가 아니라 나라님의 통치수단으로 형벌제도가 전락한다.

  탈범죄화 정책이 절실하다. 신설은 물론 기존 형벌조항들을 엄격한 잣대로 심사하고, 법정형의 조정과 함께 환형도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범정부 차원의 개혁정책이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권위주의 해소와 인권 회복을 외쳤던 현 정부에서도 탈범죄화 노력은 미미하다. 해서 그간의 깨우침들만 되뇌며 다짐해본다. 정치인이 툭하면 외쳐대는 형벌만능주의를 경계하자는. 무분별한 일벌백계는 찰나의 사이다이기 쉽다는. 과잉형벌은 되레 나와 내 자식들의 자유와 경제활동을 짓누르는 전체주의적 족쇄로 둔갑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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