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에는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아주 위험한 유령이 국경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떠다닌다. 중독이라는 유령은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도 잡을 수가 없다. 그들조차 이미 중독 바이러스에 단단히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감염된 중독 바이러스는 스마트폰 중독만이 아니다. 일중독, 돈중독, 권력중독, 동반중독, 관계중독, 술중독 … 등에 거의 동시에 빠져 있다. 그러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심지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느끼기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그런 권력층에만 일어날까? 아니다. 대부분의 경제인들, 그리고 노동자나 시민들, 학생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시내버스나 택시,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라. 아니, 우리 자신을 보라. 소름이 돋는다. 스마트폰 좀비, 즉 ‘스몸비’라는 유령이 우리 주변에 쫙 깔려 있을 뿐 아니라, 나 자신부터 스몸비다. 영화 ‘부산행’이나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나오는 모습들이 결코 가상현실이 아니다. 실제 현실이다.

  과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가? 단순히 기술 발전의 필연적 결과일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열심히 추구하면 해결될까? 아니면 또 다른 차원에서, 정보 요원만이 쓰던 고급 물건을 일반 대중들도 널리 소비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소비의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보아야 하는가?

  나는 감히, 중독이라는 유령의 세계 지배가, 폭력의 역사 및 폭력적 경험의 결과라 본다. 거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출현이나 제국주의적 팽창이라는 폭력의 역사가 집단 트라우마를 초래했다. 그 결과 각 나라마다, 각 사회마다 집단 두려움(패배의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생존전략으로 승자(승리한 시스템) 동일시를 채택했다. 자본주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전 사회적 종교로 굳어진 배경이다. 그 자연스런 귀결이 대통령부터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강하게 내면화한 소유 중독 및 증식 중독, 경쟁 중독, 성장 중독이다. 오늘날 경제성장이라는 구호를 의심하는 이는 없다. 마이너스 성장이니 제로 성장이니, 또는 소득주도 성장이니 개발주도 성장이니 하는 말은 성장 중독증을 숨길 뿐이다.

  미시적으로는 집집마다 출세와 성공 중독에 사로잡혀 부모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부모 스스로 세상살이가 힘들기에 성공하기 위해선 아이들이나마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며 강요한다. 사회적 폭력이 노동시장 및 가정을 매개로 개별적 폭력으로 둔갑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좋은 성적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12년 이상 노~력을 해서 좋은 대학(SKY 내지 수도권 대학)에 가면 1차 성공이다! 그러나 자신의 취향이나 소망이 다를 수 있기에 아이들은 그 내면에서 갈등한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열등감에 시달리며, 성공한 사람들은 우월감 중독과 탈락의 두려움에 시달린다. 한편, 2차 성공(취업)이나 직장 생활 등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기에 나중에 결혼 후엔 자녀들에게도 비슷하게 행한다. 부모의 열등감을 세탁하기 위해, 또는 탈락의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미시 폭력이 재생산된다. 생존의 두려움이 모두를 지배한다.

  그 결과, 거시적으로건 미시적으로건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을 (제대로 해소, 지양하기보다는) 억지로 망각하거나 억압하기 위해 우리는 뭔가 ‘그럴듯한’ 것에 중독된다. 돈, 술, 도박, 권력, 인기, 마약, 향락 중독 등이 바로 그것이며, 놀라운 기술 발전과 더불어 등장한 스마트폰에 이르면 너도 나도 ‘스몸비’가 되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 애쓰며, 실시간으로 확인하려 든다.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더 신속하게 더 널리 알리면 마치 내가 행복(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일 순간’이다. 곧 또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이런 식으로 스몸비 유령이 세상을 지배한다.

  과연 우리는 이런 세상을 탈출하고 싶은가? 진정 탈출을 원한다면 현재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진지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라. 그리고 나 자신을 차분하게 느껴보라. 내 자신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진정 살아 있는가?

 

강수돌 융합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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