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입사한 일본인 마유는 스물다섯살이다. 사무실에선 차분하고 수줍음이 많은 직원이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구독자 5000명의 유튜버다.

  소비 트렌드 분석에 흔히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다.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사이의 출생자를 가리키는 말로 미국에서는 고학력, 디지털 네이티브, 경험소비 선호 등의 특징으로 흔히 설명된다. 소셜 미디어로 강력한 사회적 연결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중시하며 사진, 비디오 등 컨텐츠를 직접 제작해 온라인에 포스팅한다. 제품 구입보다는 콘서트 등 문화생활 경험에의 지출을 선호하고 소유보다는 임대를 선호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요즘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한참 핫하다는 파이어 운동은 흔히 알려진 이들의 특성과 닮은 듯 달라 보인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인 이 운동은 사실 요즘의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확산되었으며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이 운동의 정수는 짧게 벌고 적게 쓰며 조기에 은퇴한다는 데 있다. 매달 청구되는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힘든 직장생활을 견뎌내는 대신 소비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파이어 족의 대표주자인 미스터 머니 머스태쉬(Mr. Money Mustache)의 블로그는 구글 집계 기준 월 조회수가 250만회를 넘는다고 한다. 파이어 족의 생활 노하우를 소개하는 팟캐스트 ‘Choose FI’는 현재까지 190개 국에서 520만회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열풍만큼이나 이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경기 불황기에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고 고소득의 주택소유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도 있다. 하지만 파이어 운동의 실현가능성보다는 이를 둘러싼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들이 얼마를 얼마를 절약하고 언제 은퇴를 하는지 보다는 이들이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운동의 추종자들은 매일의 직장생활에서 자기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앞을 내다 보아도 개선될 여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직장생활 9년 차의 은영언니를 만났다. 근처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왔다가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했다. 언니의 도서대여 목록에는 온통 퇴사와 관련된 책뿐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겐 꿈의 직장일 수도 있지만 언니에게 회사생활은 감옥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사실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만 나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직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스스로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지만 파이어 운동의 추종자들처럼 내게도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와 돌연 조기은퇴를 선언할지도 모를 일이다.

 

<코나>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