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가를 연상시키는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유독 반짝이는 눈, 그 위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눈썹과 포인트를 살린 나비넥타이까지. 외양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이 사람, 입담도 거침이 없다. ‘특별대담 - 편집국장이 만난 지식인’ 두 번째 주인공은 심리학자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다. “섹슈얼리티를 논하는 것이 왜 부끄럽냐”며 열변을 쏟아내는 그의 앞에 있노라면 마치 발가벗겨진 채로 선 기분이다. 남몰래 일기장에 쓰거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들을 김정운 소장은 ‘심리학’의 눈으로 과감히 대중 앞에 던져놓는다.

  21일 늦은 오후, 논현동 한 카페 지하에 자리한 연구소로 그가 불렀다. 황갈색의 조명빛이 은은히 감싸고 독일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빼곡한 책장, 약간 어두운 듯한 실내에 묘한 색감을 덧칠해주는 미술 작품이 눈을 사로잡는다. 은밀해 보이는 ‘그의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 연구소에 직접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가지문제연구소’라고 하니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했습니다

  “연구소 이름 지을 때는 딱히 별 생각 없었어. 뭐로 할까 고민하던 차에 어떤 기자가 장난스럽게 툭 던졌는데 ‘오 그거 좋다! 내가 쓸게’하고 쓴 거야.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여기서 많은 것들을 했지. 딱히 주제를 정해놓은 건 아니고 그냥 닥치는 대로 다 연구했어. 어디서 보고 들은 것들 중에 관심이 간다 싶으면 바로 시작했지. 요즘 많이 쓰는 ‘워라밸’ 같은 말들 있잖아. 그거 사실 십 년 전부터 내가 먼저 이야기했던 거야. 청와대 보고서에서 처음 썼던 용어거든. 그런데 사실 지금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직함은 버렸어. 이제 나는 스스로를 화가라고 규정해. 나는 ‘나름 화가’다!”

 

- 어쨌든 고려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학자가 되셨습니다

  “사실 심리학자가 된 건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늘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아. ‘고려대에 간 것은 행운이면서 동시에 불행이다!’ 수험생 시절에는 건축학과를 가고 싶었거든. 첫 입시에 낙방하고 재수를 하게 됐는데, 당시는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참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어. 재수할 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만나면 사회변혁이니 운동이니 그런 것들을 이야기 하는 거야. 근데 그게 너무 멋져보였던 거지. 그전까지 공과대를 가려고 준비하다가 갑자기 사학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땐 고려대 사학과가 멋있었으니까.”

 

-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셨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재수해서 고려대에 들어왔는데 공부보다는 데모가 먼저였던 것 같아. 제적당하고 강제징집까지 됐으니까, 하하. 아니 막 앞장서서 시위하는데 뒤를 딱 돌아보니 나 혼자인거야. 그렇게 징집돼서 군대를 마치고 복학했는데 사학과 가기엔 1학년 성적표가 전부 F라 안되고, 결국 가장 인기가 없던 심리학과를 택했지.”

 

- 그러다 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졸업 후에 할 게 딱히 없었거든. 그땐 기업에 취직하는 게 창피했어. 노동운동이 활발했으니까. 문제는 그것도 할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고민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어. 마르크스 심리학 같은 것들을 제약 없이 공부해보자하는 생각이었지.”

 

- 교수님이 쓰신 칼럼에서 읽었습니다. 독일에서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내가 유학 갔을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 그건 엄청난 충격이었지. 이전까지 내가 지향하고 쫓아오던 ‘마르크스주의’같은 가치들이 한 순간에 뒤집히는 사건이었으니까. 나는 나름대로 역사 진보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내가 가장 뒤쳐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문화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접한 거야. 문화심리학은 문화와 개인이 만나는 지점이 무엇이냐를 연구하는 학문이야. 문화적 다양성을 고민하는 분야지. 그걸로 지금까지 먹고 살았어. 아마 문화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음이었을걸?”

 

- 한국에 돌아와서는 대중과 늘 활발히 소통하셨습니다. 강연도 많이 하시고 방송에서도 자주 뵀어요. 특히 도발적인 제목의 책들이 인상적입니다

  “문화심리학자로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까’ 같은 고민을 하지. 지금도 계속 연구 중이고. 책이든 강연이든 사람들에게 문화적 맥락과 인간심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특히 글을 쓸 때만은 진실하자는 생각이야. 더 솔직해지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신조야. 심리학에 근거를 둔 작가로서 져야할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해. 나는 그저 솔직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했을 뿐인데 사람들에게 튀는 제목으로 느껴지는 거지. 이는 결국 우리 사회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 조금 낯부끄러운 주제들도 거침없이 다루셨던데요

  “아니 그게 왜 부끄럽다고 생각해? 우리 사회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태도가 너무 이중적이야. 야동이니, 남자들 밤문화니 실상은 한없이 천박하면서 겉으로는 이런 것들과 관계없는 것처럼 포장하려는 게 한국 사회의 문제야. 사실 인간의 본질은 섹슈얼리티에 있어. 예술도 여기서 시작했잖아.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바로 이 섹슈얼리티의 해소방법에 있거든. 인간은 성욕을 상징화했고, 그게 예술이야. 본능적인 종족번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드는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하나의 상징체계로 발전시킨 것이 인간 문명이거든. 섹슈얼리티에 관한 일상의 담론이 얼마나 자유롭게, 풍요롭게 오가는 지가 문화 성숙의 척도라고 생각해. 그런 담론이 아주 부족한 것이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이라는 거야.”

 

- 섹슈얼리티는 그렇더라도, 다른 다양한 사회 담론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다닌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대학생 때도 좌파, 우파 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요즘은 여기에 성별, 세대, 지역 등으로 또 갈라져서 싸우고 있어. 하지만 사회는 다차원적이고 중층적임을 명심해야 해. 보수이면서 페미니스트일 수 있고, 진보이면서 안티페미니스트일 수 있잖아. 즉 사회 담론을 구분하는 여러 카테고리가 있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봐. 사회 문제가 다차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폭이 더 넓어질 거야. 더불어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되, 자신의 포지션을 관성적으로 한 영역에 머물게 해서도 안 돼. 늘 성찰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내가 설정한 기준이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지.”

 

- 말씀을 듣고 있으니 소장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솔직하고 비판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기존의 통념을 깨는 것이 결국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그걸 뛰어넘는 담론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지. 왜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음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말할 수 있어야지. 특히 요즘은 정말 오래 살잖아. 대부분이 평균수명 3~40년에 결정된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자기 삶을 규정하는 데 그게 문제야. 지금은 평균수명 100세인 혁명적인 시대인데 말이지. 그런 사람들은 또 타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잘 듣지를 않아. 아무렴 뭐 어때. 나는 그저 이런 시각도 있다,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다 말하는 거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지.”

 

- 또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통념이 있을까요

  “민족이야 민족. 민족이라는 단위를 해체해서 사고하지 못하는 점이 우리의 큰 문제야. 나는 민족을 미래지향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봐.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는 뭐야? 같은 한민족이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 생각도 다르고 말도 다른데. 우리 생각의 기저에 깔린 낡은 민족주의를 버릴 필요가 있어. 저출산 문제를 두고 떠드는 것도 보라고. 아니, 애를 꼭 반드시 낳아야 하나? 부족한 노동력은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되잖아. 그건 또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다문화에 대한 두려움, 한민족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이야. 왜 꼭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야 하나. 이런 막연한 생각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어. ‘민족 고대’에서부터 그런 통념 부수기를 시작해봤으면 해.”

 

- 대학부터 그런 자유로운 사유와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요즘 청년세대의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대학은 단지 취업을 준비하고 졸업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찾는 곳이 되어야 해.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급선무야. 솔직히 나는 취직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돼. 그렇게 직장 들어가면, 얼마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내 친구들 다 직장에서 명예퇴직하고 뭐 할지 몰라서 방황해. 백세시대야. 너무 조급할 필요가 없어.”

 

- 솔직히 그런 말씀을 듣고 ‘이미 성공한 기성세대의 여유 있는 소리’라고 받아들이는 청년도 있습니다. 특히 소장님처럼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렇게 쉽게 말하면 안 되지! 남의 이야기를, 그저 겉보기에 성공적인 삶을 산 것처럼 보인다고 쉽게 생각하고 비판하면 안 돼. 나는 50대까지 가짜의 삶을 살았다고 말해. 내가 진짜 심리학도가 되고 싶어서 심리학과 간 것도 아니야. 그건 성적으로 맞춰서 간 거고, 정말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온 거거든.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서 너무나도 돌아왔어. 아까 내가 ‘나름 화가’라고 말했잖아? 요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아. 내 최종학력은 일본 미술 전문대 졸업이라 생각하고, 가장 자랑스러운 학위라고 자부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내가 이전까지 심리학 교수로서 성공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야. 활동을 다 접고 몇 년 전 일본으로 가서 이 나이에 혼자 미술 공부하고 고생하고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잘 몰라. 대학생들이 그냥 나처럼 50돼서 후회하기 전에 많은 것을 경험해봤으면 하는 거야. 새롭게 도전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난 그저 웃긴 교수, TV에 자주 나오는 그런 교수로 지냈겠지.”

 

- 알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 여수 근처 섬에 화실을 만들어 놨어. 이름은 ‘미역창고(美力倉考)’야. 이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그럴 계획이야. 내가 추구하는 재미를 찾아서, 마음껏 즐길려고.”

 

- 소장님다운 계획입니다. 듣기만 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물론 내가 추구하는 재미의 차원이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또 가지는지 성찰하면서 살아야겠지. 마냥 말초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 조금 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일을 하고 싶어.”

 

-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나는 멘토니 뭐니 그런 말을 싫어해. 그렇지만 먼저 50년을 살아본 입장에서 조급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싶어. 대학시절에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려 들지 마라.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라고. 또 열등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글|장강빈 편집국장 whisky@

정리|변은민 기자 victor@

사진|조은비 기자 juli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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