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사회에서 범죄자로 취급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첫 무죄취지의 판결을 받은 오승헌(남·34) 씨가 감회를 밝혔다. 헌법적 법익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월한 가치라던 대법원의 굳건한 판결이 14년 만에 뒤집혔다.

  지금까지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병역 및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통상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아왔다. 하지만 지난달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법 제88조 1항에 규정된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 중 하나로 인정했다. 이에 대한 학계의 법적해석은 극명히 갈리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손 들어준 대법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승헌 씨의 상고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해 형사처분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에 비춰 타당하지 않으며, 소수자를 포용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반된다”고 무죄 판결했다.

  이전까지 병역법 제88조 1항에서 정당하다고 인정돼 처벌받지 않는 사유는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질병이나 재난·사고 등이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형사처분을 감수하면까지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지키고자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국민 다수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전향적인 판결은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종류조항’에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장영수(본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에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이 많이 임명돼 이념적인 성향이 달라진 것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승헌 씨의 변호인 측 오두진 변호사는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무시해왔던 양심의 자유 조항이 이번 판결로 인해 비로소 의미 있는 조항으로 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체복무 이행의무에 의견 엇갈려

  현재 병무청은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을 수용해 ‘입영 및 집총 거부자’의 입영 일자를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로 연기한 상황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 의사자는 각 지방병무청에 병역 이행일 연기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기소 진행 중인 사건이 930여 건에 달해 대체복무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내려진 이번 무죄판결이 사실상 병역면제 특혜가 될 수 있단 지적이 있다. 무죄 판결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신설된 대체복무를 차후 강제할 수 있는지가 모호해서다.

  장영수 교수는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은 결국 병역의 의무 면제와 같은 말”이라며 “현재로서는 이들이 대체복무를 이행해야 하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차진아(본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근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대체복무가 마련되더라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으로 대법원은 대체복무가 도입될 때까지 판결을 미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체복무가 마련된 후 현재 무죄 판결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강제하는 것은 소급적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차 교수는 “대체복무를 소급적용하는 것은 위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의무를 면제해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급적용으로 볼 순 없다는 입장도 있다. 하태훈(본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분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을 한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내용으로 하는 현역병과 다른 방식의 병역의무를 이행할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오두진 변호사는 “구법에서 신법으로 이행할 때 따르는 여러 가지 경과규정을 마련해 과도기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할 수 있다”며 “국가에 대한 의무가 면제된 것은 아니므로 경과조항이 소급입법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체복무제 거부에 대한 유·무죄 판결은 신설 이후의 문제인 만큼, 현 판결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면제로 이어진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는 이야기다. 오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신설된 대체복무 이행을 거부할 경우 국가가 어떻게 대처할 지 아직 알 수 없다”며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이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안이 마련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주관적인 양심, 진정성 판단이 가능할까

  헌법재판소 주문으로 대체복무제 신설이 확실시돼 위조된 양심을 걸러내기 위한 현실적인 평가는 필요한 상황이다. 대법원은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확고하며 진실해야 하고, 삶의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가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가정생활, 성장과정, 학교생활기록부, 사회경험, 즐겨하는 게임 등 삶의 전반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실성을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태훈 교수는 “대다수 국민이 군대에 가는 것을 불이익으로 여기는 현실에서는 양심을 심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심의 심리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차진아 교수는 “양심은 고도로 주관적이기에 타인이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평가하는 것도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다”며 “개인의 양심은 객관적으로 타당할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두고 법관들의 판단도 엇갈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되기도 무죄가 되기도 한다”며 “통일적인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오두진 변호사는 “형사법 체계에서 범행 동기나 고의와 같은 내심을 법적 구성요건으로 설정하고 심사해왔으면서 양심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대법원이 설치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 교단에 회중 책임자들의 발언 등을 살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가 양심을 인정해줄 만한 기준이 되도록 복무강도를 현역보다 무겁게 설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장영수 교수는 “양심을 판단할 다른 객관적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현역복무보다 무거운 대체복무는 선택 자체만으로 양심을 증명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당 판결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론을 달랠 수도 있다. 최병욱(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대체복무제가 쉽다는 국민 인식이 생기면 병역기피자가 급증할 수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당당하게 이행하고, 국민들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합리적 대체복무안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글|송채현 기자 br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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