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 편집국장이 만난 지식인’의 세 번째 주인공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다. 푸근하고 친근한 외모, 부드러운 말투와 막힘없는 논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과학자다. 지난 11월 23일,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그의 연구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 어떤 계기로 뇌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존재론적인 질문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같은 고민을 늘 했죠. 천체물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대학원에 가서부터는 관심사가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바뀌었어요. ‘우리는 어떻게 우주를 인식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 겁니다. 인식론적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보니 관심사가 뇌 과학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뇌 과학을 공부하면서는 특히 인간의 의사결정에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사람처럼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인공지능을 만든다거나,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등 다양한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물리학자로서의 기본 정체성은 늘 견지하려고 해요. 실험을 하면 매번 다양한 결과들이 나오지만, 결국 그것을 관통하는 근본 원리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물리학의 정신이죠.”

 

- <과학콘서트>나 <열두 발자국>을 읽으면 ‘뇌 과학만의 매력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운 과학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뇌를 연구하면 자연스레 이해심이 깊어집니다. 예전에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도 이해하게 되죠.”

 

- 예를 들면 PC방 살인사건 가해자 김성수 같은 사람도요

  “그렇죠. 범죄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세상에 등장한 인간 유형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고, 우리는 그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뉴스를 통해 보는 거예요. 하지만 다른 쪽 끝에는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거나, 놀라운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남다르고 극단적인 생각들을 폭력적이지 않고 생산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죠. 이 모든 것들이 뇌를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폭력적인 인간이라도 용서는 안 되지만 뇌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있죠.”

 

- 그 스펙트럼의 가운데 위치한 사람들도 극단의 영역으로 갈 수 있나요

  “누구나 극단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환경이라는 요소가 영향을 미칩니다. 흥미롭게도, 세상에 벌어지는 90퍼센트의 범죄는 7퍼센트의 사람들이 저지릅니다. 도대체 그 7퍼센트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요? 타고난 성향과 환경, 사회구조가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겁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똑같이 폭력적인 행동을 했을까?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죠.”

 

- 자신의 생각을 극단적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을 흔히 마주하게 됩니다. 의견 차에 따르는 사회적 갈등도 심해 ‘한국의 담론 수준이 낮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담론 수준이 떨어졌다고 보지는 않아요. 다만 예전에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볼 기회가 없었고, 이제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즉각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된 거죠. 짧고 즉각적인 반응이다 보니, 너무 단순하고 천박하기도 한 의견들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깊이가 이 정도구나’ 하는 것을 서로 목격하게 된 거죠. 예전에는 전통 미디어를 통해 오래 묵히고 정제된 글만 돌아다녔다면, 지금은 즉각적인 반응과 생각이 오가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마다 생각의 깊이가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고 여론을 한 가지로 통합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국론분열, 너무 당연한 것이죠. 우리 사회가 사회통합보다는 사회적 갈등 해소, 정치적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의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걸 알고 인정하면서, 상호공존하는 것이 세상이잖아요. 다만 민주사회에서는 그것들이 선거를 통해 뭉쳐지면서 어떤 한 가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거고, 또 그렇게 사회현상이라는 것이 만들어지죠.”

 

- 민주주의는 또 합의를 이뤄가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건강한 토론’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토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토론을 해서 ‘너도 나처럼 생각해야 해’라고 강요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죠. 토론은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에 사건이 터지거나 논쟁과 이슈가 생겼을 때, 논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의견을 내죠. 저 사회현상에는 이런 맥락이 있어, 난 이렇게 생각해, 이런 식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의견들이 그 후 쏟아지죠. 모든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자기 입장을 정하지는 못해요.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고민될 때, 논객들이 제시하는 생각을 듣고 참고하며 여러 관점을 접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내가 가장 동의하는 생각을 찾아가는 겁니다. 반대되는 생각을 접하면서 그 존재를 또 느끼게 되고요. 이게 토론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열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토론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합의된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고 봐요. 공통의 정답, 반드시 옳은 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교수님께선 줄곧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태도를 문제라고 지적하시는군요

  “네, 저는 그 원인의 일부를 교육에서 찾아요. 우리가 학교에서 평가 받을 때 교과서에 적혀있는 것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잖아요. 정작 아무도 교과서 속 서술에 대한 ‘너의 생각은 무엇이니?’라고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어요. 교과서에 있는 대로 외워서 써야 좋은 점수를 받죠. 내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고, 주어진 정답을 내가 외워서 서술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을 사춘기 시기에 배운 거죠. 그래서 우린 점점 굉장한 도덕주의자가 되는 것이죠. 교과서에만 집중하면서 ‘교과서적인 판단’에만 매몰됩니다. 이분법적으로, 이건 답이 뭔지만을 고민하죠. 그러면서 답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고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다양한 생각들을 섬세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교육에 그 책임이 있죠.”

 

- 다양성에 대한 고민은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 많이 이슈가 된 것 같아요. 혐오 표현에 대한 논쟁도 그렇고요

  “사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나와 다른 성, 민족, 지역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특정 사람들을 혐오하고 차별적 발언을 하고, 불이익을 실제로 가하는 행동들을 합니다. 그런 말과 행동은 정당화돼선 안 되죠. 이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깨달으려면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어봐야 해요. 하지만 굉장히 편향된 정보를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거나 하면 상당히 우려스러운 ‘혐오 사회’가 나타나게 되죠. 특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을 때 인간은 쉽게 가짜 정보에 휩쓸리거든요.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막연한 혐오행위들을 쏟아내고요.”

 

-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는 혐오적인 생각을 특히나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표현할 자유가 없다고 봐요.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은 별개의 문제죠. 그래서 유럽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지극히 제한하고 있죠. 사적인 대화에서조차 차별적인 발언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죠.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표현과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서 제한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특정 성을 채용 과정에서 배제시키거나, 승진을 막는다거나 하는 것들을 금지하는 거예요. 이를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저는 동의하기가 어려워요.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죠.”

 

- 방송에서 텍스트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텍스트의 위기, 특히 신문의 위기는 또 저희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거든요

  “여전히 텍스트는 중요하고 앞으로도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거예요. 다만 신문의 미래는 조금 다르죠. 깊이 있는 텍스트가 하는 역할이 있고, 또 짧은 글이 하는 역할이 있거든요. 문제는 개인미디어, 소셜미디어가 짧은 글들이 하던 역할을 가져가면서 신문이 애매해진 것이죠. 그렇다면 신문은 점점 깊이 있는 글과, 심층 취재 및 어젠다 세팅을 통해 그 신문만의 생각과 성찰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리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각각의 신문이 비슷한 내용을 지금 정도의 깊이로 써내는 것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여요. 저널리즘은 굉장히 소중한 거잖아요.”

 

- 대학 학보사도 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대학 학보사의 미래는 다른 맥락에서 심각합니다. 제가 카이스트에서 학교방송국 담당 지도교수거든요. 대학 언론에 대한 관심이 정말 커요. 문제는 대학 방송국이나 학보사가 변화 속도가 굉장히 더디다는 점이죠. 세상은 이미 바뀌고 있는데, 가장 변화에 민감해야할 대학 언론이 가장 느려요. 비전을 가지고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2년 정도 열심히 하고 나면 학생들 모두 졸업반이자 선배, 취준생이자 꼰대가 되어버리죠, 하하. 2년 주기로 사고하는 사람들에게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지도교수가 주도하기도 적절하지 않고요. 이러한 환경이 반복되다보니 여전히 7~80년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문, 방송이 돼버리는 겁니다.”

 

- 대학 언론이 어떻게 혁신할지 조언을 구하고자 합니다

  “실험을 해야 해요. 학생들이 자기가 각자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만들고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그냥 올리는 거죠. 그게 모여서 학교 방송, 학교 신문이 되는 경험이 필요해요. 고정된 시간에 음악만 틀어주는 거 말고, 또 매주 기사 쓰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라는 거죠. 종이신문을 왜 꼭 만드나요? 많이 읽지도 않잖아요. 졸업생, 재학생, 지도교수가 모두 모여서 올해는 신문 내지 말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자고 논의해 봐요. 5~10년 주기의 장기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가지라는 겁니다. 우리는 올 한해 준비 기간만 가지고, 이후 새로 들어올 후배들이 바뀐 포맷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도록 틀과 기준을 잡아가자는 거죠. 한해 발행해야 할 부수들을 땜빵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너무 안타까운 거잖아요. 진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를 준비해야죠.”

 

-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생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참 마음이 아파요. 기성세대가 굉장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사회안전망이나 패자부활전 없고 경쟁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선 모험하라, 혁신하라 닦달하는 것은 말도 안 되잖아요. 사회 안전망을 잘 만들고 격려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먼저 태어나서 앞에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만들어낸 발자국을 대학생들이 그저 참고만 해줬으면 해요. 저 사람 같은 삶을 살아도 위험하지는 않겠구나. 나는 그럼 좀 더 과감한 모험을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글 | 장강빈 편집국장 whisky@

정리 | 박연진 기자 oscar@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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