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사람들은 어딘가 들떠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2018년을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고자 ‘핫 플레이스’에 찾아가보지만, 인파 탓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지기도 힘들다. 시끌벅적한 도심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는다면 이태원의 ‘헵시바 극장’으로 가보자.

  이태원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걷다보면 빨간 벽돌집이 나오는데, 헵시바 극장은 이곳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부드러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단연 소품이다. 피노키오와 피에로 인형이 계산대에서 손님들을 반기고 있다.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에 등장하는 흘러내리는 시계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벨벳 소재의 붉은 소파와 커튼, 군데군데 뜯겨나간 벽지까지. 개성 가득한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마치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헵시바 극장에서 술과 고전 영화가 빠지면 섭섭하다. 입맛에 따라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가게 안쪽의 작은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오늘 상영되는 영화는 <리빙 라스베이거스>다. 낡은 화면과 지지직거리는 잡음, 배우들의 촌스러운 패션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원한 맥주와 짭짤한 치즈까지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노트북으로 영상을 재생하던 사장 최승열(남·40) 씨도 어느새 영화에 푹 빠졌다. “사실 저도 손님으로 왔다가 가게를 인수한 거예요. 오래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을 주로 상영하고 있어요.”

  고전 영화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극장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아늑한 분위기에 푹신한 소파까지 있어, 정신없이 바빴던 하루를 정리하기에 제격이다. 졸음이 밀려온다면 잠시 눈을 감아도 좋다. 헵시바 극장은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당신의 아지트니까.

 

정한솔 기자 de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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