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취재원이 다그치듯 목소리를 높이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러게 양심적 병역거부 취재원은 다들 격앙돼 있었다. 헌법 전문가부터 군복무를 마친 친구들, 그리고 이번 달이면 입대하는 동생 녀석까지 물어보면 화를 내듯하니 조금 머쓱해 했다.

  사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요즘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조롱이나 분노의 대상까진 아녔다. 그들이 지겠다고 결정한 진한 빨간 줄의 무게를 ‘리스펙’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11월 1일 대법원에서 대체복무제 없이 내린 무죄판결은 많이들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대법원은 대체복무제의 존부여부와 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하고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짜로 아주 별개의 일은 아니다.

  첫째로, 무죄판결 전에 대체복무제를 마련했다면 업무 종류와 복무기간을 설정하는 논의가 지금보단 수월했을 것이다. 형벌을 감수한 병역 거부자를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제는 ‘정당한 구제’로 공감대가 가능했지만, 무죄판결이후의 대체복무제는 어쩐지 ‘병역기피수단’처럼 쓰일 것만 같은 의심이 앞서게 된다.

  둘째로, ‘양심적’이라는 단어를 향해 돌아오는 각종 비난이 오히려 짙어졌다. 소수자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적 포용을 실현하겠다는 이번 판결취지가 무색해진다. ‘양심’이라는 단어는 법률가의 정의대로 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번 무죄판결이 병역거부→무죄→대체복무→거부→무죄?→… 로 끝도 없이 이어져 사실상 병역면제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 오가는 논의엔 대체복무자 심사의 어려움, 그로 인한 병역 기피자 양산 가능성 등이 뒤섞여 있다. 이 모든 것의 결정체는 ‘누군가는 면제효과를 누릴 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반감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로 ‘교정직 합숙 36개월’을 잠정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곳저곳으로 물이 새어 들어가 다른 물건을 고장 내기 전에 왜 물컵을 여기다 뒀느냐 구시렁거리면서라도 치우는 것이 먼저이다. 취재는 어려웠고, 대화도 어려웠다. 격앙된 대화가 잦아들고 불쑥 그가 덧붙였다. 뭐 몇 개월이라도 더 있기는 싫네.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고. 꼭 그게 아니면 안 되는 사람 아니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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