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때 탈 항공권 e티켓을 회사 프린터로 출력한다. 휴대폰과 노트북, 보조배터리도 회사에서 꼽고 충전한다. 퇴근하는 길, 사무실에 남아있는 간식을 가져간다. 종종 볼펜이나 A4용지, 심지어는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도 집에 챙겨간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회삿돈으로 구입한 재화를 개인적으로 쓰는 거다. 보통은 ‘이 정도 쯤이야’하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는 ‘소확횡’ 이야기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올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따왔다.

  회사비품 사고 포인트는 내 이름으로 적립하기부터,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용변은 꼭 회사 화장실에서 보기까지 많은 소확횡 비결이 트위터로 공유됐다.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을 챙기는 것은 귀여운 편에 속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사적으로 회사 프린터를 쓰고, 사무실에 있는 클립 몇 개를 챙겨온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잠시 제쳐두고,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내 돈 주고 산다 해도 큰돈이 드는 것들도 아니다. 그런데 왜 꼭 회삿돈을 쓰고 나면 짜릿하고 통쾌할까. 업종도, 회사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왜 공통적으로 소확횡에 공감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보상 심리’다. 과중한 업무에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내 노동력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은 거다. 측정할 수도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상사뿐 아니라 후배 눈치까지 보고, 야근에 회식까지 열심히 했지만 이에 비해 급여는 턱없이 적다. 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항의를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뭐라도 더 가져가자는, 이렇게라도 회사에 소심한 복수를 하자는 생각이 드는 거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2위라고 한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OECD 관계자는 근무시간이 긴 점을 언급하며 “한국은 주관적 웰빙이 가장 낮은 국가”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가 또는 도덕적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익숙해지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작은 일탈이 큰 도둑질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수백억 원대 횡령을 했다는 기업인도, 수십억 원대 연구비를 빼돌렸다는 교수도 어쩌면 소확횡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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