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서울경찰청 현장감식반 박반장의 전화다. 구기동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니 나올 수 있는지 물어본다. 장소를 확인하고 현장으로 출동, 30분 후 현장에 도착 박반장의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장감식반이 시체가 있는 곳까지 감식활동을 하는 동안 기다리며 현장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해 집 주변을 살펴본다.

우리나라는 시체에 대한 법적관할이 법의관이나 검시관에게 있어 모든 변사현장에 법의관이나 검시관이 나가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살인사건 현장에 법의관이 직접 나가 현장에 대한 정보도 얻고 시체에 대한 검사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제도적인 문제와 함께 법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많지 않아 모든 변사현장에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최근에 발생한 일가족이 살해되는 사건과 같이 중요한 사건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 나가고 있다.

시체가 있는 곳까지 감식이 모두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시체를 살펴보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간다. 우선 시체가 놓여 있는 곳 주변 상황을 살펴본다. 피가 떨어지거나 튀어 있는 방향, 주변의 물건들, 변사자의 의복상태 등등.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상황을 촬영하고 기록을 한다.

그리고 시체에 대한 검사를 시작한다. 사망자는 여자로 머리를 둔기에 맞았고 가해자와 다툰 흔적이 있다. 사망시간 추정을 위하여 실내온도를 측정하고 항문으로 온도계를 꽂고 최초 체온을 측정한다. 옷을 벗기고 시체에 시반을 살펴보고, 시체경직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처음 현장에서 시체를 살펴볼 때 현장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 사망원인을 확인하고 사망의 종류(사망의 종류는 법적사인을 의미하며 크게 내인사, 외인사, 불명으로 나누고 내인사에는 자연사, 병사, 외인사에는 자살, 타살, 사고사 그리고 불상으로 나눈다)를 판단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현장에 떨어진 혈흔의 모양에는 힘이 가해진 방향, 변사자의 움직임, 자세 등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망 후 24시간 안에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기는데 이것을 조기시체현상이라고 한다. 37도를 유지하는 체온이 사망과 동시에 몸에서 열생산이 중단되면서 주변에 온도에 따라 떨어지기 시작한다.

약 150년 전 영국의 한 의사가 체온이 떨어지는 정도를 역으로 계산하여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는 보고를 한 후, 비록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때 오차범위가 크기는 하지만 일정 시간대를 추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계산식이 발표되었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우리 몸 혈관을 흐르는 혈액의 적혈구가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여 혈관 안에서 가라앉으면서 짙은 빨간색으로 물을 들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시반이라고 하는데 시체가 반듯이 누워있는 경우 등과 엉덩이, 다리 뒤쪽에서 볼 수 있다.

시반은 사망 후 약 한 시간이 지나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하여 6시간 전에는 시체의 자세를 바꿈에 따라 이동하지만 이후에는 고정이 되기 시작하여 12시간 정도 후에는 시체의 자세를 아무리 바꿔도 변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사망 직후에는 힘없이 늘어지는 시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직이 되기 시작하고, 완전히 경직이 되면 머리와 발끝만 받쳐놓아도 자세가 유지되는 상태까지 진행된다. 이것을 시체경직이라고 한다. 시체 경직을 사람마다 개인차가 심하고, 온도와 같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1~3시간 후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12시간 이상이 되면 전체 관절에 나타난다.

이상의 세 가지 시체현상은 사망시간을 추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고 이 세 가지 현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검사하면 각각의 시체현상이 결정하는 시간대가 결정되고 이 시간대가 서로 겹치는 곳이 생긴다. 여기에 수사를 통해 변사자의 통화기록, 목격자 등을 확보하면 좀더 정확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변사자의 사망 시간이 라디오 음악방송이 나오던 7시30분부터 8시 사이라고 추정, 형사가 용의자에게 방송 진행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처럼 30분 간격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것은 사망 직전에 본 목격자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

변사자의 손에서 머리카락 하나가 발견되었다. 머리카락은 즉시 유전자검사를 의뢰하도록 하고 머리에 있는 상처의 모양을 살펴보고 부검을 하기로 결정하고 변사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기도록 한다.

최근의 급속한 과학발달로 유전자 검사결과가 범인을 찾는 중요한 증거로 등장한다. 국내에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입되었고 현재는 혈액이나 정액 한 방울은 물론, 유리잔에 묻은 지문이나 가해자가 깨문 자국에 묻은 침에서도 세포를 검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 머리카락 하나는 아주 많은 증거물에 속한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고 범인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의 유전자형과 용의자 것을 비교할 수 있어야만 범인을 입증할 수 있다. 즉 용의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범죄자의 유전자은행을 만드는 것은 용의자를 찾는데 아주 중요하다.

부검실, 변사자를 부검하면서 상처의 모양을 자세히 살피고 상처의 모양, 머리뼈가 골절된 형태를 바탕으로 사용된 둔기가 지름이 약 2cm 정도 되는 망치와 같이 원형의 도구라는 것이 확인되고 담당수사관에게 사망원인은 둔기에 의한 머리손상임을 알려주고 둔기의 종류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한 가지 사건을 사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사건 해결과정을 살펴보았다. 위 사건은 법의관의 입장에서 보면 사망원인, 사망의 종류가 모두 아주 분명한 사례로 어렵지 않는 사건에 속한다. 현장에서부터 자살, 타살, 사고사 여부가 불분명한 사례가 사실을 가장 어려운 경우로 이런 경우 부검을 함과 동시에 추가적으로 혈액과 다른 체액, 장기 등을 채취하여 독극물에 대한 검사를 하고, 필요한 경우 장기조직의 조직검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사인이 밝혀지게 된다.

사망원인과 사인을 밝히는 일은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아주 전문적인 분야다. 그리고 한사람의 법의의사가 탄생하려면 군복무기간을 포함하여 대학에 입학한 후 최소 1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왜 개업을 하지 않고 맨 날 시체만 보는 법의학을 하느냐’고. 그럼 나는 이런 대답을 한다. ‘가족과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사망원인, 사망의 종류를 밝혀 죽은 이가 이 세상을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마지막으로 법의학을 같이 할 수 있는 좀 더 많은 후배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그래서 한사람의 억울한 죽음도 없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길로(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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