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의 작품으로 본래 제목이 <삼국지통속연의>인 <삼국지연의>, 그냥 줄여서 <삼국지>는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시대를 달리하면서 다양한 번역이 나오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인데,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김구용, 박종화, 이문열, 황병국, 김홍신, 조성기, 정소문, 황석영, (이하는 만화)고우영, 박봉성 등 많은 문학 작가 및 만화가들이 제 나름의 번역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지난 10년 이상 우리나라 <삼국지>계를 석권해 온 이문열 <삼국지>(민음사)의 특징은 이른바 평역이라는 데 있다. 작가의 견해나 해설에 해당하는 글을 삽입하는가 하면, 등장 인물에 대한 작가의 평가를 노출시키거나, 심지어 역사 기록으로서의 <삼국지> 그러니까 진수가 편찬한 정사<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차이를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또 이문열 삼국지 등장 이전 대표 주자였던 월탄 박종화 <삼국지>가 유장하고 고풍스런 글맛이라면, 이문열 <삼국지>는 상대적으로 현대소설의 문체에 가깝다.

 하지만 작가 나름의 평가나 개입이 잦다보면, 판소리에서 고수가 넣는 추임새가 창소리보다 잦은 꼴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자기 류의 해석은 공공연하기보다는 줄거리의 자연스런 흐름을 타고 은연중에 내비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이의를 제기해볼 수도 있다. 그밖에 이문열이 조조를 냉철한 현실주의자 혹은 합리주의자의 모습으로 재평가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평가는 오래 전에 나온 많은 일본어판 <삼국지>에서 이미 유행했다.

 세칭 명문대 수석 합격생이 ‘<삼국지>를 여러 번 읽은 게 논술 시험에서 큰 도움이 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광고 컨셉이 많은 고교생 및 그 학부모들에게 어필했다는 점도, 이문열 <삼국지>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한편 이문열 <삼국지>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황석영 <삼국지>(창작과 비평사)는 정역(正譯), 즉 나관중의 원본을 가장 충실하게 살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점을 바꾸어 말하면 <장길산>의 황석영을 기대하고 읽기는 힘들다는 걸 뜻한다. 작가 황석영의 작품 세계를 반영하는 나름의 해석이나 문체를 기대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더구나 정역에 주안점을 둔 경우는 조성기, 황병국 등 이미 유례가 많다. 사실 <삼국지> 원문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편이며 이야기 전개도 빠른 편이다. 때문에 정역에 주안점을 둘 경우 번역자 나름의 스타일이나 주관을 반영시킨다는 게 쉽지 않다. 어떤 <삼국지>가 가장 좋은 지는 주관적인 판단 소관이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다. 평역이니 정역이니 하는 기존의 구도를 벗어나는 새로운 차원의 삼국지, 요컨대 명실상부한 제2의 창작으로서의 <삼국지>는 불가능한 것일까?

작가 장정일이 <삼국지>계에 출사표를 던짐으로써 그런 아쉬움을 달래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현재 모 일간지에 <삼국지>를 연재 중이고 연재가 끝나면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지금까지 연재된 장정일 <삼국지>를 읽어 본 소감을 말한다면, 역시 제2의 창작 수준에는 못 미친다. 이 글을 읽는 재기 넘치는 젊은 <삼국지>팬 가운데 한 번 도전해볼 사람 없을까?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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