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우리 출판계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자’와 ‘10억’이라는 키워드다. 저성장, 고실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진 현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한상복의 <한국의 부자들>(위즈덤하우스)은 1년 2개월에 걸쳐 100명이 넘는 부자들을 만나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부자의 기준? 이 책에서는 거주 중인 집을 뺀 자산 총액이 10억 이상인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책을 보면 부자라고 해서 특별히 ‘용빼는 재주’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아껴야 잘 산다’는 진부하지만 만고불변에 가까운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부자들의 소비 잣대는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고, 필요한 물건이라면 단 한 푼이라도 싸게 사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고가의 물건도 적절한 범위 안에서 구입한다는 것 등이다. 부자들은 무척이나 부지런하며 부동산이나 금융 관련 정보에 늘 눈과 귀를 열어둔다.

그렇게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관건은 기회를 잡는 데 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어음을 거둬들여 큰돈을 모았다. 사채업자를 중간에 끼고 기업을 상대로 돈놀이해서 거액을 모았다.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자신이 다니는 은행에 대출 신청한 사실을 알고, 그 근처 단독주택 두 채를 빚으로 산 뒤 갈빗집까지 지어 돈을 크게 불린 은행원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반칙이라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이런 책은 어떨까? ‘10년만 노력해서 10억 한 번 모아보자!’는 섹시한(?) ‘지은이의 말’을 앞세운 김대중의 <나의 꿈 10억 만들기>(원앤원북스)라는 책이다. 갖가지 조언이 가득하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일단 남은 인생에 필요한 자금 스케줄을 짠다. 가족의 나이와 주택구입, 자녀교육, 자녀결혼 등 일생 동안의 수입과 지출 아이템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 다음 현재의 자산과 부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택문제 해결과 종자돈 마련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이렇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본업에 충실히 임한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며 한 우물을 파라는 것. 그리고 종자돈으로 목돈을 만들어 결정적 투자기회를 기다린다. 또한 집은 다른 요소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장만한다. 주식을 비롯한 모든 투자는 반드시 여유자금으로 한다. 경제의 흐름을 읽는 공부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보다는 위의 두 책을 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 아니면 10억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투기가 아닌 투자라고는 하지만 불로소득을 올리는 데 주력할 것을 권하는 게 아니고 또 무엇일까? ‘일 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말은 시쳇말이 아니라 시체(屍體)말, 하나마나 한 죽은 말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되살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 도무지 미덥지 않다. ‘가엾은 백성의 가난을 향해서는 낭비하지 말고 부지런히 참아라’하는 꼴인데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선 노동자와 농민의 처절한 몸부림은 ‘끝까지 추적해 사법 처리해야 할 불법 폭력 시위’다.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가? 재테크 실용서 두 권에서 시작된 질문은 철학적인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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