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통념이 예술에 잣대가 되어, 예술을 사회에서 밀어내려 하고 있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관객의 심사평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라는 암초에 걸려있다.

무료하게 살아가던 사내가 한 여성을 만나 사랑을 이루는 내용인 이 영화는 아주 고전적인 멜로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적어도 한 요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죽어도 좋아』의 멜로 영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70대의 노부부로 실제 이들의 성과 사랑을 담은 영화이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노인의 사랑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평단에선 갈채가 쏟아지고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기도 했으나 제작사인 「메이필름」의 재심요청에도 불구,「영등위」는 7분간의 실제 섹스장면과 성기노출 등을 이유로 끝내 제한상영가라는 방침을 풀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제한의 이유가 단순히 여과없이 노출된 ‘性’에 있는가에 대해선 재고의 여지가 있다. “영화의 맥락이나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전개된 정사장면이 아님에도 불구, 노인이라는 역할설정이 생각보다 큰 파장을 낳았다”는 최준영 문화개혁 시민연대 관계자의 말에서 엿보이듯 우리사회에는 숨어있는 ‘사회통념’도 이번 영화 제한 상영에 큰 몫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는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노인의 이미지를 무너뜨린 대가까지 함께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에서 보여진 노인의 性이 왜곡된 것일까?  7월『중앙일보』에서 박진표 감독의 ‘우리 부모 혹은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젊은이 못지 않음을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기획했다’라는 말처럼 그는 노인의 일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60대 노인 중 남성의 73%와 여성의 63%가 주 1회 이상 성행위를 한다’는 노년의 성생활(SeniorSex.Org) 통계자료를 참고하면, 영화『죽어도 좋아』가 거짓을 꾸며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연령주의에서의 탈피를 주장하고 있는‘진짜를 진짜로 담아낸’영화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런 영화가 일반인의 정서에 악영향 미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관이 하나 없는 한국사회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것은 아직 노인에 대한 사회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드러낸다. 어쩌면 이런 사회인식과의 괴리 속에서 「영등위」는 나름의 현실적 잣대를 그은 것인지 모른다.

너무 앞서나간 제작진과 제자리를 지키려는 「영등위」. 이 사이의 이같은 괴리를 메꾸는 역할이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시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바라볼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늙고 추한 색광이 아니라 태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라는 어느 네티즌의 말이 메아리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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