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얇고 시간은 없다. 팍팍한 일상에 치여 문화생활이 아쉬울 때, 영화관은 여유를 되찾기 좋은 장소다. 영화 관람은 저렴한 관람료와 높은 접근성 덕분에 문화생활의 큰 부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의 등장으로 청년층이 영화관을 찾는 일은 이전에 비해 줄었다. 떠나가는 젊은 관객들을 잡기 위해 멀티플렉스는 다방면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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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 속 콘서트장, ‘음향 특화관

  지난 겨울,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싱어롱 상영으로 큰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까지 일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만 주로 체험이 가능했던 싱어롱 상영은 <겨울왕국><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으로 인해 하나의 상영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마동훈(미디어학부) 교수는 함께 노래 부르는 데 익숙한 노래방 문화, 모르는 사람과도 같이 어울리는 2002 월드컵 열기 등이 싱어롱 관람 속에 녹아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찬철(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 교수는 영화관이 더 이상 정적인 문화공간이 아니라 영화와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코블리’(코엑스와 웸블리의 합성어)로 불리는 메가박스 코엑스점은 프레디 머큐리 코스프레를 한 열성팬들이 많이 찾아 화제가 됐다. 싱어롱 상영이 진행되는 메가박스 코엑스점 MX관은 입체음향 설비를 갖춘 특별관이다. 정면과 후면에 각각 배치된 스피커가 앞,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구분해 영화의 생동감을 높였다. 메가박스는 싱어롱 상영에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영화 제작사와 입체음향 전용 버전을 별도 제작하기도 했다. 김창건 팀장은 영화 장면 속 위에서 지나가는 헬기 소리가 상영관 위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최대한 소리를 입체적으로 전달해 현장감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싱어롱 상영을 처음 경험했다는 생명대 17학번 박 모씨는 낯선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Live Aid’ 공연 장면에서 다 같이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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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에서 찾는 패스트힐링

  최근 패스트힐링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패스트힐링이란 바쁜 일상 속 짧은 시간이나마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문화다. CJ CGV의 경우 패스트힐링의 흐름에 맞춰 유명침구업체 템퍼와 협업해 세계 최초 리클라이닝 침대 영화관인 템퍼관을 마련하기도 했다. 패스트힐링을 원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대표적인 특별관으로는 자연을 느끼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씨네 앤 포레가 있다.

  CJ CGV 강변점 씨네 앤 포레는 회색 도시 속에서 자연을 맛볼 수 있는 자연 친화 컨셉으로 꾸며져 있다. 상영관으로 향하는 전용 입장로는 숲을 연출하는 초록빛 조명이 감싸고 있고, 상영관 앞 휴게 공간엔 파라솔과 피크닉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10분 전부터 가능한 일반 상영관과는 달리 씨네 앤 포레2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상영관 내부에서 숲속 분위기를 맘껏 느끼며 편안하게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비치된 좌석 또한 씨네 앤 포레의 특징 중 하나다. 콩이 담긴 자루를 연상케 하는 1인 소파 빈백석과 휴향양지에 있을 법한 형태의 카바나석’, 피크닉 느낌의 매트석은 안락함을 더했다. 상영관 내부 벽면을 장식한 순록 이끼와 바닥에 깔린 인조잔디는 숲 속만의 싱그러움을 구현해냈다. 천장엔 별 모양 LED가 박혀있어 의자에 기대 천장을 바라보면 잔디 위에 누워 밤하늘에 별을 보는 것 같은 연출도 특징이다. 씨네 앤 포레에서 영화를 관람한 김승현(·21) 씨는 숲 속 느낌을 잘 살려 영화 보는 내내 즐거웠다일반 상영과 비교해 5000원가량 비싼데 그 이상의 효용을 봤다고 말했다.

 

<4> 많은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아 함께 노래하고 편하게 힐링하고 깊은 감상에 젖는다. 

  ‘감상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멀티플렉스는 상영하는 영화의 다양성을 겨냥한 전략도 내놓았다. 다양성 영화는 국적·장르를 가리지 않고 제작되는 저예산 영화다. 멀티플렉스는 상업영화에 비해 접하기 힘든 다양성 영화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CJ CGV ‘아트하우스는 멀티플렉스 최초로 독립·예술 영화를 엄선해 상영하는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이다. 아트하우스에서는 상업광고 대신 독립·예술 영화 예고편과 특별영상을 상영하며, 엔딩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는 등 특별한 관람 문화를 제공하고 있다. 정찬철(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 교수는 상업영화는 범죄와 폭력 등의 자극적 이야기와 이미지로 가득해 장르 다양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CGV가 영화상영문화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아트하우스라는 전용관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은 영화산업과 예술의 뜻깊은 상생이라고 말했다.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은 상영 이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혁신센터가 영화 배급 과정을 지원한 독립영화 <박화영>이 전국 롯데시네마 아르떼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아르떼 상영관은 <박화영>을 광고하고 시사회를 개최하는 등 작품 홍보에 큰 힘을 실었다. 정찬철 교수는 수익의 사회적 환원과 공유, 잠재적 가치에 대한 투자라는 차원에서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을 지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단순 상영 외에도 독립영화 제작지원과 같은 멀티플렉스 측의 직접투자로 상생정책이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관객들의 심도 있는 감상을 돕기 위해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CGV 아트하우스에선 영화 상영 후 신진 영화 평론가가 영화를 해설하는 관객 밀착형 영화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메가박스에서도 한 해의 다시 보고픈 영화 10편을 관람객 투표로 선정해 평론가 해설과 함께 보는 시네마 리플레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시네마 리플레이프로그램을 통해 관람한 박연진(자전 미디어16) 씨는 영화 관람 중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요소들에 대한 평론가의 해설을 들으니 영화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찬철 교수는 영화를 소비상품이 아닌 문화상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능동적으로 소통에 참여하도록 하는 영화 관람문화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수 기자 hotel@

사진제공CJ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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