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9 13:56 (화)
트렌드가 된 신조어, 언어사용의 ‘선’ 고민해야
트렌드가 된 신조어, 언어사용의 ‘선’ 고민해야
  • 박진웅 기자
  • 승인 2019.01.29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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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게 바로 너야~ 갓띵작 정신 못 차리겠어~”(보이그룹 에스에프나인(SF9) 미니4집 타이틀곡 ‘MAMMA MIA’ )

 

  지금까지 청소년, 이른바 급식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신조어를 대중문화에서 접하는 건 이제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급식체를 포함한 신조어는 최근 방송·음악·광고 등 각종 매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언어 파괴라며 부정적으로만 여겨졌던 신조어가 근래엔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문화로 떠오른 신조어바람

신조어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급식체. ‘급식체10대 초중고생들이 사용하는 다소 저속하고 유치한 언어습관을 일컫는 용어다. ‘소오름’, ‘클라스처럼 어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음을 왜곡하거나 ㅇㅈ(인정)’, ‘ㅇㄱㄹㅇ(이거레알)’과 같이 초성만으로 구성한 단어들이 대표적이다. ‘댕댕이(멍멍이)’, ‘커엽다(귀엽다)’와 같이 한글 자모를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치환해 단어를 다르게 표기하는 야민정음도 새롭게 등장한 언어습관이다. 강영배(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는 급식체는 언어를 놀이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청소년기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며 이전 세대에 비해 대면적 의사소통보다 문자(text)를 활용한 의사소통의 빈도가 늘어난 것도 최근의 급식체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신조어가 유행한 것은 오늘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급식체와 유사한 신조어는 항상 존재해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스턴트 메신저를 중심으로 사용됐던 (거절표현)’, ‘하이루(인삿말)’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당시는 SNS의 파급력이 현재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해당 신조어들은 특정한 사용자층에 머물렀다. 연규동(연세대 인문학연구원 HK문자연구사업단) 연구교수는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청소년기의 생물학적 특성이 언어생활에도 발현되는 것이라며 신조어가 일시적으로 유행하다 멸종하는 양상은 항상 존재해왔던 일이라 밝혔다.

  ‘급식을 졸업한 성인들이 급식체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712월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성인남녀 중 30.7%가 평소에도 급식체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SJN(사장님)’이나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등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급여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기성세대가 급식세대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결과다. 이에 박진호(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사회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젊은 세대의 생각, 언어, 문화를 더 자신 있게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신조어가 확산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양지화된 신조어, 건강하게 가려 써야

  과거 인터넷에 국한돼 사용됐던 신조어가 근래 들어 양지화된 양상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해피투게더>,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의 TV 프로그램에서는 신조어의 뜻을 맞히는 신조어 퀴즈코너를 찾아볼 수 있다. JTBC <아는형님>, 채널A <도시어부> 등의 예능프로그램에도 에바쎄바’, ‘좋자너~ 신나자너~’ 등 급식체 자막이 활발히 사용되기도 한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이 주요 소비자인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려는 당연한 움직임라며 최근 방송가에서는 친숙하고 재미있는 신세대 용어들을 자막·편집 작업에 적극적으로 차용하길 권장하는 흐름이라고 밝혔다. TV 프로그램뿐 아니라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서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작년 8월 발매된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Stray Kids)’의 미니2집 타이틀곡 갑자기 분위기 싸해질 필요 없잖아요는 제목과 가사에 노잼’, ‘갑분싸같은 급식체 용어를 등장시켰다.

  다만 주로 청소년들이 급식체를 향유하고 있는 만큼, 그 속에 내재된 비속어가 문제로 지적된다. 성적 비속어 은 강조 접두사로 활용돼 ㅆㅇㅈ(매우 인정한다)’, ‘ㅆㅅㅌㅊ(매우 뛰어나다)’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작년 12월 방영된 tvN 단막드라마 <#좋맛탱: 좋은 맛에 취하다>는 성적 비속어가 섞인 ‘X나 맛있다에서 유래한 존맛탱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을 멸시하는 용어인 ○○나 집단을 깔봐 호칭하는 ○○과 같은 혐오표현이 신조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김슬옹 국어문화원 부원장은 혐오성 발언을 포함한 신조어는 상대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것뿐만 아니라 없던 혐오감까지 만들어 내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신조어 사용문화를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규동 연구교수는 언어 속의 비속어와 혐오표현은 결국 사회정신의 반영이라며 급식체 자체를 문제 삼기보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식을 개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홍기돈(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경쟁주의 사회풍토와 온라인 익명성의 심화가 급식체 속 혐오표현의 생산을 가속화했다언어사용의 지켜야 할 을 정의할 사회적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미디어 속 급식체, 심의는 어디까지?

  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지상파 종편 등 방송언어 규정 위반 15개 채널 권고 의결을 발표했다. 방심위는 SBS <런닝맨> 어때, ㅇㅈ?’, ‘몰빵TV조선 <연애의 맛> 멍뭉미’, ‘feel몽사몽tvN <신서유기5> 핵인싸’, ‘말잇못등 급식체 자막이 사용된 17개의 프로그램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51(방송언어) 3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권고조치했다. 당시 방송심의소위원회는 방송을 통한 우리말 훼손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우리말을 파괴하는 방송 언어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미디어 속 급식체의 범람에 대해 줄곧 보수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작년 10월에도 방심위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서발달과 바른 언어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에서의 급식체 사용을 규제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문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은 또래 집단과 청소년층에서나 사용할 법한 말을 방송에서 남용하는 건 언어현실의 반영을 넘어 불통을 야기한다무분별한 급식체 사용은 언어의 본래적 기능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침해할 여지가 있으므로 규제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언어습관이 변화함에 따라 방심위의 심의규정 또한 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유시현(·22) 씨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용어만 거르면 방송에서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방심위의 권고 조치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박진호 교수는 언어파괴라는 이유만으로 급식체를 배척하는 건 다소 궁색한 사고라며 언어문화에 대한 일방적 규제보다는, 보존할 필요가 있는데 파괴되는 언어표현과 가치관이 있다면 이를 살리고자 노력하는 것이 생산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글ㅣ박진웅 기자 quebec@

일러스트ㅣ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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