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대가 주 소비층인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에 의한 아이돌 시장이 음악계를 독점하면서 대중가요에 감각이 판을 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의 콘텐츠인 댄스비주얼은 감각적이긴 하나 분명 대중문화의 으뜸 기능이라고 할 위로측면에서 나름의 자기 몫을 한다. 지치고 불확실한 미래에 고통 받는 젊음은 신나는 댄스음악에서 위안을 찾는 듯하다.

  인정하지만 우리 대중가요는 위로와 위안을 내세워 실은 현실을 기피, 도피하는 내용의 노랫말이 대부분이다. 그저 세대의식을 살짝 입힐 뿐 왜곡된 사회현실을 들여다보고 그 부패와 부조리에 덤벼드는 일은 없다. 그것은 투쟁이지 예술활동은 아니지 않느냐며 고개를 흔들 것이다. 사실 주류음악에 그것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언더그라운드와 인디가 저항의 기치를 내걸지만 다수 대중은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리얼리즘 가요가 없다. 분명 대중음악이 사회비평의 기능을 수행하며 변화의 물결을 이끌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그 흐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이 시점에서 정태춘을 생각한다. 그가 누구인가. 우리에게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가 아니라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라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면서 정면으로 시대와 충돌한 인물 아닌가.

  ‘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라고 놀라겠지만 1990년대 교실이데아의 서태지가 천하를 휘젖고 있을 때도 우리 음악가들은 음반을 내기 위해선 미리 공연윤리위원회(공륜)’에 노랫말을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했다. 사전심의라는 이름이었지만 실은 검열이었다. 정태춘과 그의 아내이자 음악동료인 박은옥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 제도적 악습과 싸워 마침내 1996년 헌법재판소 위헌결정 즉 폐지를 이끌어내는 위업을 이룩했다.

  이들은 애초 서정적인 가요를 불렀다. 하지만 1987년 시민항쟁을 거치면서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는 낭만성과 작별하고 가열 찬 투사로 환골탈태한다. 노래하며 길거리로 나가 모든 시위와 집회의 현장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운동권가수로 거듭난 것이다. 정태춘은 심지어 한 방송에서 자신의 궁극지향이 민주화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그는 낡은 사회를 부수고 새 판과 새 틀의 사회를 열망하면서 치열하게 달려갔다.

  1990년 혁명적 시점을 아로새긴 기념비적 앨범 <아 대한민국>을 출시한다. 그러나 한곡을 제외하고 전곡의 노랫말이 공륜심의에서 반려되고 만다. 그가 사전심의 투쟁에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태춘과 같은 존재가 왜 지금도 요구되는지는 아 대한민국의 가사를 보면 안다. 이 노래는 나온 지 올해로 2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어떤지 노랫말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 대한민국. ,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 대한민국, , 저들의 공화국..’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1978시인의 마을이래 40년 활동의 궤적을 쌓았다. 40년 기념앨범을 곧 출시한다는 소식이다. 젊은 세대가 그를 통해 이 나라 대중가요가 감각적 표출만이 아니라 반성적이고 투쟁적인 시대응시도 있어야 함을 인식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은 쉬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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