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구한 걸 학생들에게 나누는 공간이었는데, 떠나려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김경현(문과대 사학과) 교수는 정든 연구 공간이자 교육 공간을 떠나는 것이 못내 섭섭한 모습이었다. 1995년부터 본교에 부임해 역사학도를 지도한지 어느덧 24. 김 교수는 퇴임 후의 자유에 대한 기대보다 정들었던 교정과 학생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에 더 아쉬워했다.

 

  ‘명강 제조기의 교육철학

  교정을 떠나는 김경현 교수만큼 학생들도 그의 퇴임에 진한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서양고대의 신화와 역사’, ‘서양사 입문등 학생들이 손꼽는 명강으로 유명한 김 교수는 석탑강의상을 포함해 우수강좌상을 30회 가까이 수상했다.

  그는 강의 준비를 위해 매사 성실히 임했던 자신의 노력이 학생들에게 통한 것 같다며 미소 를 띠었다. 김경현 교수는 수업이 있는 날이면 매일 새벽에 일어나 강의 개요를 숙지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는 연구를 하는 중에도 수업에 도움이 될 법한 자료를 찾으면 연구를 멈추고 강의 내용을 재구성하곤 했다. 배우들이 무의식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매 순간 리허설을 하듯이, 강의 내용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김경현 교수는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로 선생과 학생 사이 소통을 통해 진행되는 상호작용식(interactive) 수업을 꼽았다.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 내용을 전달하니까 학생들이 집중을 잘 못 하더라고요.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는 2000년부터 5년에 걸쳐 전체적인 강의 패턴을 쌍방향 토론식으로 바꾸는 데 골몰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이 더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오니 저 자신도 더 최선을 다하게 돼 선순환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고마운 학교, 고마운 학생들

  김경현 교수는 학사와 석사 과정을 본교가 아닌 다른 대학에서 이수했고 교수로서 첫 근무지도 고려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고려대와 긴 시간 동안 인연을 이어간 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학교의 분위기 덕이었다. “우리 학교는 교수가 자신의 소임을 다 하는 한 아무런 구속을 하지 않아요. 고려대에 몸담은 내내 이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김 교수가 교육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묵묵히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중앙도서관의 연구지원정책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본교 도서관은 제한된 재정을 장서구매에 치중하는 대신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연구자료 수요 충족을 위해 상호대차와 원문복사 서비스를 확대해왔다. 김경현 교수는 국내에서도 유례없는 강점이라며 도서관의 학술지원 서비스를 극찬했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제는 구하지 못하는 자료가 없을 정도입니다.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경현 교수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사의를 전했다. 그는 매 학기 학생들이 정성껏 남겨준 강의 평가가 없었더라면 자신의 강의도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 밝혔다. “좋은 선생이 좋은 학생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반대가 더 진실이라 믿습니다. 우수한 고려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 가지라도 좋으니 자신의 강점, 또는 특기로 삼을만한 것을 꼭 찾으세요. 그리고 후회 없이 몰두해보시길 바랍니다.”

  퇴임 이후에도 김경현 교수는 비슷한 일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앞으로 운동하는 시간도 갖고 글도 쓰며 평소처럼 연구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에요.”

 

글│이준성 기자 mamba@

사진│고대신문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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