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정의, 진리. 정년퇴임을 앞둔 심완주(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고려대의 교육이념인 세 단어로 꿈의 의미를 재정립했다. 의사가 곧 이었던 심 교수는 본교 의과대에 입학한 후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허무함을 느꼈다. 깊은 고민 끝에 심 교수는 성취하면 완결되는 목표가 아닌 자유·정의·진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꿈으로 삼고 계속해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학교 이념을 이정표 삼아 휴머니티(humanity)를 중시하는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간과 사회를 사랑하며 의학을 대하다

  1972년 본교에 입학한 심완주 교수는 학부 시절동안 치열하게 의학을 공부했다. 의사로서 휴머니티를 가장 크게 어기는 건 의학 지식이 부족해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 믿어서다. “‘휴머니티를 중시하는 의사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학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어요.” 의사가 된 이후에도 심 교수는 휴머니티 정신을 늘 염두에 두며 환자를 진료했다. “모든 환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환자들의 진료 방향을 결정했죠.”

  생리학을 좋아해 순환기 내과에 관심이 많았던 심완주 교수는 본교 의료원 최초의 내과 여교수이자 국내 최초의 여성 심장 전문의가 됐다. 작년에는 여성 최초로 대한심장학회장을 맡기도 했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기까지 심완주 교수는 겁내지 않고 늘 도전하며 살아왔다. “무슨 일이든 겁을 내니까 어려운거죠.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나아가면 못할 게 없어요.”

  심완주 교수는 오랜 기간 동안 여성 심장질환 연구에 각별한 열정을 쏟았다. 남녀는 염색체와 호르몬 상의 차이가 있어 신체가 다르지만 성별을 구분해 진행한 임상연구는 적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65세 이상 여성 인구 중 다수가 고혈압, 협심증 등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 실태는 열악했다. “성별 차이를 반영한 정밀한 연구가 없으면 정확한 진료를 보기 어려워요. 진료환경을 개선하고자 여성 심장질환의 특징을 연구하는 학회를 만들어 여성 심장질환 연구를 지속해왔어요.”

 

  멀리 보고 높이 뛰어라

  심완주 교수는 후배 의학도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변화하는 사회현상을 반영해 의학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수하지만 병을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죠. 노인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돕기 위해 혈관과 심장 노화에 관련된 연구에 특히 힘써야 해요.” 심완주 교수는 고령화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 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을 이용해 의학을 발전시켜야한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지금까지 축적된 의학 분야의 방대한 데이터를 목적에 맞게 분류하고 이 데이터를 진단에 사용해야 해요. 심장, 혈관 계통의 생물학적 신호를 파악하고 그 중 이상적인 신호를 찾는 것이죠.”

  40년 가까이 본교에 몸담은 심완주 교수는 고려대가 자유·정의·진리 정신에 입각해 천천히 전진해왔다고 표현했다. “고려대는 어떤 목표가 있을 때 눈에 띄게 화려한 성과를 내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죠. 우리 학교는 부, 명예, 권력처럼 여러 세속적인 가치를 좇지 않고 자유, 정의, 진리라는 기본적인 가치에 집중해왔어요.”

  심완주 교수는 본교 의료원과 의과대학의 발전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기부를 통해 학교와 후학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한 것이다. “제가 보낸 기부금이 후배들의 꿈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용돼도 상관없어요.” 퇴임 이후의 계획을 밝히며 심완주 교수는 사그라지지 않은 열정을 다시금 보였다.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서 놀아야 재밌죠. 의료원에 촉탁의사로 남아 환자를 진료하고 레지던트 교육에 참여하며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겁니다.”

 

최현슬 기자 purinl@

사진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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